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닝 Feb 09. 2023

day26. 할매니얼 푸드

#26일차


요즘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이라고 할머니 세대의 취향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새대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


레트로와 건강을 생각하는 트렌드가 음식에도 도달했다.



양갱, 약과, 한과, 쑥, 흑임자 등등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먹던 음식들이 진짜 다시 유행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유명한 약과를 사기 위해서 오픈시간을 기다리는 '약케팅'이라는 말도 생겼다.



나에게 이 유행이 반가운 이유가 있다.


내 입맛이야 말로 바로 할매니얼이기 때문이다.


양갱, 쑥, 흑임자, 떡, 누룽지, 콩고물 어느하나 빠짐 없이 내 취향이다.



아주 어렸을 때(아마도 유치원생쯔음)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꽃 농장을 하셨다.


계절마다 다른 꽃을 키워내었다.


나의 기억에 할머니 할아버지네는 크고 넓은 비닐 하우스가 있었고,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고, 안개가 자욱한 드넓은 꽃밭이 있었다.



꽃을 수확하면 큰 직판장에 가지고 간다. 화훼조합이었던것 같다.


어린 나는 새벽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집에 혼자 둘 수 없으니 데리고 간거였겠지.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직판장에 가면 꽃이 산처럼 쌓여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매 번 나를 데리고 구석에 있는 자판기에 가서 따뜻하고 맛있는 초록색 차를 뽑아주셨다.


버튼에는 '쑥차'라고 씌여있었다.


달콤하고 따뜻하고 조금은 걸쭉한, 거기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료였다.



자라서 어른이 되고 쑥차, 쑥라떼를 파는 곳을 볼 때마다 지나지치 못하고 한 잔씩 사먹어봤다. 그 때의 그 맛이 그리워서 다시 한 번만 먹어보고싶어서.



그런데 어쩐일인지 어디에서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뜨거우니까 후후 불어서 먹으라고 내 손에 쥐어주었던 몇 백원짜리 그 종이컵 쑥차가 어디에도 없다.



아마도 그 자판기 쑥차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함께 담겨졌었나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day25. 去有风的地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