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갈 날만 기다린 기쁨
우리는 기쁨이와 함께 참 많은 곳을 여행 다녔다. 강릉, 평창, 주문진, 남해, 그리고 경기도 온갖 지역들까지 안 데리고 다닌 적이 없다. 워낙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부부인지라 휴가철을 두세 달 앞두고 우리는 일찍부터 머리를 맞대고 휴가 기간에 방문할 행선지에 대해 모색을 한다. 이번 여름 여행 또한 한~참 전에 계획했었고 남편은 마음속으로 날짜를 하나둘씩 지워가며 이 날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열심히 사회생활에 최선을 다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찾아왔다!!
이번 우리의 행선지는 양양이다. 주변 친구들에게 '양양'을 거론하면 하나같이 눈썹을 까딱하며 '뭐야-너 MZ야? 너랑 전혀 어울릴 곳이 아닌데..' 했다. 제대로 양양을 가본 적이 없는 나는 이유를 몰랐다. (하룻밤 자 본 오늘은 안다. 그 이유를..)
기쁨이는 이유도 모른 채, 아마도 가까운 산책길을 나서는 줄 알고 신나게 차에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차가 점점 달리고 내릴 기미가 보이질 않자 이 녀석 가는 내내 한숨을 있는 대로 쉬어댔다. 창 밖을 보다가 한숨, 내 얼굴을 마주하다가 한숨, 운전하는 남편 팔을 붙잡고 또 한숨, 그러다 마침내 포기한 듯 깊은 잠에 빠졌다. 비가 주룩 내리고 첫 행선지인 원주에서 우리는 이른 시각부터 바비큐를 즐겼다. 우리 기쁨이는 차에서 자다가 내 품에 안겨 나와 고기 먹는 우리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눈으로 화살을 쏴댔다. '엄마 아빠는 계획 하에 왔지만 나는 내 의지가 아니란 말이다!!! 고기라도 줘라!!!!!!!' 기쁨이는 우리가 나눠준 고기+사료를 정신없이 먹고서 또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차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강아지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터라 여행지에 온 첫날이면 거의 기쁨이는 초저녁부터 기절모드다. 그래도 멀미를 크게 하지 않으니 그게 어디인가.
강아지와의 여행은 사실 불편한 점이 많다. 강아지동반이 되는 곳을 찾아야 하고, 설사 동반이 된다 하더라도 실내의 가능여부를 늘 따로 전화로 물어봐야만 한다. (기껏 찾아갔더니 밖에 있으라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므로.. 이 날씨에 구이가 될 순 없다.) 이번에 원주에서 찾아낸 곳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완벽해서 남편도 나도 연신 고개를 끄덕했던 곳이다. 게다가 커다란 상주견도 있다!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조심스레 기쁨이에게 온 이 상주견은 오래간만에 찾아온 새 친구가 마음에 쏙 들었는지 우리 뒤를 졸졸 쫓아왔다. 전 날 내내 심통이었던 기쁨이도 그제야 활짝 웃는 얼굴이다. 둘은 잔디밭을 내달리고 내달렸고 서로 마주 보고 냄새도 맡다가 또다시 내달렸다. 커다란 키의 스탠더드 푸들을 따라잡겠다고 우리 기쁨이는 정말이지 치타처럼 네 다리를 앞 뒤로 180도 이상 쫙쫙 뻗어가며 죽어라 달렸다. 동네에서 그래도 꽤나 알아주는 달리기 견인 기쁨이는 처음으로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음에 몹시 놀란 눈치다. 계단을 한 번에 5칸은 뛰어내리는 친구를 보고 기쁨이는 간도 크게 자기도 5칸에서 점프를 하면서 뛰어내렸다. 기쁨이의 그 공중 체공 모습을 본 우리 부부는 순간 아니야!!!! 했고 동시에 기쁨이는 멋진 착지를 하려다 턱를 바닥에 제대로 드리 받았다. 아픈지 모르는 건지 그저 좋아서 한참을 놀던 둘. 큰 친구는 기쁨이를 수풀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했는데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두 아이가 걱정돼서 달려가보니 이 친구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을 기쁨이에게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사이좋게 물을 마시고 올라오는 두 강아지의 표정이 몹시 밝다. 키 작은 기쁨이가 잘 올라오는지 이 큰 아이는 계속 뒤를 돌아봐주면서 안전한지 여부를 체크한다.
이미 오전 중에 온 기운을 다 빼고 완전히 뻗어버린 둘. 이른 시간이기도 하고 사장님이 많이 배려를 해주셔서 모처럼 마음 편하게 기쁨이를 놀게 할 수 있었다. 하도 뛰어서 위장운동이 촉진됐는지 기쁨이는 아침에 변도 무려 두 번이나 봤다. (만세! 응아 신경 안 써도 된다!) 보석 같은 곳을 발견해서 너무 기분 좋았던 하루의 시작이었다.
날씨가 정말 끝내주게 맑다. 뙤약볕이기는 하나 확실히 바닷가여서인지 그늘에 있으면 그래도 시원하다. 기쁨이는 바다보다도 연신 상의탈의를 하고 몸에 멋진 그림을 선보인 채 다니는 서퍼들이 신경 쓰이는지 눈이 빙글빙글 돈다. 쿵쿵 울리는 노래도 그렇고, 주변에 세상 개성 넘치시는 분들도 그렇고, 왜 친구들이 '양양'이 우리랑 어울리지 않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팔에 스티커라도 붙여야 하지 않나.. 싶을 만큼 우리만 너무 단색 도화지 같다.) 세상 보수적인 우리는 사람들을 피해 최대한 조용한 산책로만 골라 다녔다. 푸르른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더위 때문에 헥헥 거리는 기쁨이라서 사진을 많이 담지는 못 했다. 정말이지 여름은 강아지와 여행을 하기에 가장 최악의 계절이긴 하다. 털 옷으로 둘러싸여 있는 데다가 땀샘도 발바닥 밖에 없는 강아지들은 그야말로 조그만 밖에 다니면 숨이 넘어갈 지경으로 숨을 쉰다. 기쁨이의 혀도 한껏 밖으로 삐져나왔다.
숙소에 오자마자 침대부터 차지하는 기쁨이. 아침에 친구강아지와 달렸던 것이 컸는지, 아니면 집이 그리워서 마음이 허했는지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던 사료를 이 날은 두 번이나 맛있게 먹었다. 친구에게 기쁨이가 밥을 두 번이나 먹는다고 했더니, [사람인 나도 너랑 하루를 다니면 나중에 피곤해서 뻗는데 기쁨이는 오죽하겠어!]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미안하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엄마라서. 이 날도 기쁨이는 초저녁부터 잠을 청했다. 참고로 우리 기쁨이.. 집에서는 저녁 8시부터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고 밤 12시까지 공 던져달라고 날아다니는 강아지인데 여기와 서는 새나라의 강아지가 다 됐다. 머리만 바닥에 닿으면 코를 댕댕 골며 자는 우리 강아지.
기쁨이는 작년에 처음으로 바닷가를 경험했다. 철썩이며 왔다가 사라지는 파도가 신기한지 몇 번이고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면서 구경을 했다. 개들이 헤엄을 치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어린 강아지이고 놀랄까 봐 우리는 구명조끼까지 입히고 용감하게 바닷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땅이 발에서 멀어지자 몹시 당황하던 기쁨이는 눈이 평소보다 배로 커져서 허둥지둥 헤엄을 쳤는데 이리저리 넘실거리는 물에 어쩔 줄을 모르다가 해변에 가면 땅을 디딜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녀석. 그 이후로 기쁨이는 물에 함께 들어가기만 하면, 해변 방향을 향해 죽어라 네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의 강아지들 중에서 정말 물이 너무 좋아서 헤엄을 치는 아이는 한참 멀리 있는 곳에서 첨벙거리는 레트리버뿐이었다. 나머지 소형견들은 물놀이가 아닌 그야말로 생존게임 중이었다. 짭짤한 소금물 때문인지 기쁨이는 끊임없이 찬물을 들이켠다.
올해는 생각보다 수온이 낮아서 완전하 들어가지는 않고 발만 담그다가 나왔다. 다가오다가 사라지는 물을 열심히 쫓아 뛰던 기쁨이는 순간 도망칠 타이밍을 놓쳐서 네 다리가 흠뻑 젖었다. 그래도 시원한 본인 발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헤헤 웃으면서 모래사장 엎드려 해맑게 웃었다.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강아지와의 여행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 반려견 문화가 많이 정착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지역에 따라서 호의적이지 않은 곳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분명 [동반]이라고 적혀있으나, 야외만 된다는 곳들도 많고, 실내 동반을 하긴 하나 사장님이나 점원들이 빨리 먹고 나갔으면.. 하는 눈으로 계속 눈치를 주는 곳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이를 꼭 데리고 가는 이유는, 호텔링을 맡기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분명 좋은 것을 먹고 볼 때마다 우리는 서로 기쁨이를 떠올릴 것이고, 아마도 혼자 하염없이 엄마 아빠를 기다릴 얼굴이 아른 거려서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기쁨이와의 여행은 신경 쓸 것도 많고, 제약도 많지만 그 순간들조차도 즐기려고 한다. 우리 이웃 분은 무려 50KG나 되는 강아지와도 전국을 다 다니신다고 했다. 본인들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숙소도 [애견동반]이라는 말 하나만 보고 고민 없이 찾아가신다고. 그런 분들도 있는데 8KG기쁨이를 못 데리고 다닐 이유는 없다. 비록 하루, 이틀이 지나면 기쁨이의 표정은 점점 피로가 누적되는 것이 보이고, 아마 집에 도착하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 드러누워서 이틀은 꼼짝없이 잘 것이지만.. 그래도 혼자 보다는 셋을 이 녀석도 좋아했기를 바래본다. 기쁨아!! 조금만 참아! 우리 내일 드디어 집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