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만 집은 가기 싫어
와버리고 말았다. 폭염이라는 그 어마무시한 계절이!!!! 해만 떴다 하면 땅이 지글지글 끓어오르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공포의 폭염. 원래도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기쁨이와 함께 한 이후로는 더더욱 여름은 달갑지 않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 기쁨이는 무조건 실외배변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3번은 밖을 나가야만 한다. 그런데 타들어가는 해가 내리쬐거나 아님 장마철이라서 비가 주룩 주룩 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렇게 난감할 수가 없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기쁨이는 여름이고 겨울이 고를 떠나서 그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아기 강아지였다. 그래서 모래라는 이웃 친구와 함께 아무도 다니지 않는 땡볕 거리 위로 두 견주를 질질 끌고 다니며 너희에게는 산책, 나와 모래 견주님에게는 고행인 시간을 매일같이 보냈다. 심지어 모래는 기운 넘치는 중형견이었어서 그 견주분은 늘 마지막에는 흐느적흐느적 하며 공기가 다 빠져나간 목소리로 '기쁨이는 그래도 지금 들어가는구나~모래는 아직 멀었어어어' 하고 시야에서 멀어지시곤 했다.
작년에 그렇게나 엄마 아빠를 땡볕으로 이끌던 기쁨이는 올해 2살이 된 이후로 장난기가 확 가라앉았다. 집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대리석 판 위에 바짝 엎드리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운 것도 알고, 또 다른 비숑에 비해 유독 더위를 힘들어해서인지 밖에 나가면 햇볕이 아닌 그늘만 골라 다닌다. 요리조리 동네 나무 아래와 그늘진 공간을 누비고 나면 나는 이미 땀범벅에 가지고 나온 물통은 금방 빈 통이 되고 만다. 쉬도 하고 응아도 하고 집으로 당장 뛰어들어가고 싶지만,, 우리 기쁨이의 계획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 녀석에겐 다 생각이 있다.
쉬, 응아가 끝나면 그는 떠난다. 자신의 팬들에게 팬서비스를 하러.. 기쁨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유독 예뻐해 주시고 많이 안아주시는 사장님들이 주변에 계신다. 동네 카페, 채소가게, 빵집, 쿠키가게, 미용실 등에 계시는 사장님들인데 기쁨이는 이 분들에게 인사를 하나 하나 순서대로 하지 않으면 집을 가지 않는다. 설령 바닥에 앉아 중간중간 숨을 고를지언정 집에 이렇게 쉽게 들어갈 수는 없다. 양 볼을 쓰다듬어주고 얼음 물을 챙겨주고 운이 좋으면 고구마 간식까지도 챙겨주는 누나들을 하늘이 두쪽나도 보러 가야한다는 그의 강한 의지.
원하는 장소에 도착하면 위와 같이 환하게 웃는 얼굴이 되고 집에 가자고 하면 금새 골이 잔뜩 난 표정이 되는 기쁨 이는 정말 딱 3-4살 어린아이 같다. 다행히 요즘은 강아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인지 사장님들의 영업장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기쁨이를 참 아껴주신다. (물론 기본적인 펫티켓을 나와 남편이 열심히 지키기 때문에 더 감사히 배려를 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이 없는 시각의 카페에 조근조근 주변의 말소리와 음악소리, 그리고 엄마의 책장 넘기는 소리와 간혹 바라보는 눈빛을 즐기면서 기쁨이는 자신만의 휴식을 취한다.
우리가 다니는 산책로는 꽤나 여러 군데다. 가을 혹은 초봄일 시기에는 한참을 걸어서 지하철 역으로 한 정거 정도의 거리를 신나게 걸어 다니고 주로 나무와 풀이 많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아주 어린 강아지일 때부터 풀냄새를 많이 맡았던 기쁨이는 지금도 강변을 따라 있는 잔디밭을 발견하면 슬슬 [흥]이라는 엔진이 작동하기 시작하고 서서히,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어마무시하게 달린다. 풀에 몸을 한껏 비비기도 하고 나무둥지마다 냄새를 세심하게 맡아보고 지나다니는 개미도 열심히 관찰하며 연신 고개를 갸웃갸웃한다. 한 번은 잘 걸어가다가 갑자기 세상이 떠나가라 꺠갱 깨갱 난리 법석이라서 지나가던 모든 이들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키고 다들 의심의 눈초리로 견주인 나를 바라보았는데, 서둘러서 몸 여기저기를 살펴보니 발가락 사이에 개미가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개미에게 물린 기쁨이의 신고식. 그때 다시 확인했다. 얘가 얼마나 엄살이 많은 강아지인지. 기쁨아. 이제 개미집 기웃거리면 안 되겠지?
어제는 쇼핑몰에 갈 일이 있었다. 쇼핑몰은 인간들에겐 시원하고 하루 종일 먹고, 보고, 사고가 모두 가능한 장소이지만 기쁨이에게는 그저 정신 사납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출몰하는 피곤한 곳이다. 정말 오래간만에 쇼핑몰에 간 기쁨이는 개모차에 앉아서 마치 시골쥐가 서울에 상경한 듯한 눈으로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감하기 좋아하는 기쁨이는 사람들과 눈도 맞춰보고, 눈이 마주치면 헤헷 하고 미소도 지어 보였지만, 워낙에 바쁘고 복잡한 장소라서 누구 하나와 제대로 인사하기가 쉽지 않자 그때부터는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 그냥 기쁨 ZONE누나사장님들이 그립고 빨리 풀이랑
나무냄새 실컷 맡고 싶은 너의 뾰로통 얼굴.
우리 기쁨이는 서울강아지는 못 되나 보다.
밤 산책은 아마도 기쁨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우리 부부의 저녁 일상은 식사, 헬스장, 기쁨이 산책으로 구성된다. 그렇다.. 우리의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하여 운동으로 끝난다. 헬스장에서 돌아오고 내가 아파트 밑에서 기쁨이를 데리러 올라간 남편을 기다리는데 벌써 저 위에 계단에서부터 엄마 아빠와의 산책에 대한 기대 때문에 거친 숨을 내쉬며 내달려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엄청난 들숨 날숨 소리가 복도를 채우고 나를 향해 힘껏 점프! 하려는 기쁨이가 보인다. 앞서 가다가도 뒤를 돌아보며 우리를 향해 꺄핫! 미소 한 번. 풀 숲에 머리를 박고 한참을 킁킁 하다가도 다시 엄마 아빠를 순서대로 바라보며 헤헷 얼굴. 확실히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을 좋아하는 기쁨이는 우리 부부만 이야기를 하면 삐져가지고 중간에 바짝 엎드리고 고개를 흥 돌린다. 나도 이야기할 때 껴줘!! 내 이야기도 해줘! 내 얼굴도 바라봐주면서 이야기해 줘! 하는 눈빛. 강아지는 동물이고 사람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을 턱이 없지만, 반려견은 가족의 일부로서 존재하고 싶어 하고, 가족의 일원으로 사랑받고 싶어 하고, 대화에도 끼고 싶어 한다. 강아지가 견주와의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깥냄새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함도 있지만 자신의 세상이자 우주이기도 한 견주와 보낼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이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밤공기를 마시며, 여름밤의 향기를 맡으며 우리 셋은 익숙하지만 늘 새로운 산책길을 걷는다. 휴대폰 없이.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면서 말이다.
오늘 저녁도 아마 안 들어간다고 버팅길지 모르다. 괜히 딴청을 피우고 새로운 냄새를 맡는 척하면서 네 다리에 힘을 주고는 시간을 최대한 끌어보는 계획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골목으로 우리 부부를 잡아끌고서 세상 자연스럽게 인생 네 컷 기계가 즐비한 가게로 들어갈 수도 있겠다. (실제 그런 적이 있어서 예정에도 없던 사진도 찍었었다.) 너무 피곤하며 달래서 집에 들어가지만 웬만하면 기쁨이가 안내하는 길로 따라가는 우리 부부. 우리는 안다. 힘들어도 우리가 한 걸음 두 걸음 더 걸어줄 때마다 우리 셋의 추억은 더 쌓여가고 우리 기쁨이의 미소는 더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것을. 엄마 아빠가 너의 발걸음마다 함께 해줄 테니 오래도록 우리 함께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