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손이 많이 가는 반려견과의 생활

얼굴을 마주하고 걸어주세요.

by forever Young


오늘도 기쁨이의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키보드를 꺼내 들었다. 기쁨이가 아침에 변을 보지 않고 오는 날이면, 그날은 진짜 바쁠 때, 정말 일을 나가야 할 때 낑낑하며 응가하러 나가자는 표시를 한다. 웬만하면 뛰어서라도 나가지만 정말 시간이 안 될 경우에는 집에서라도 해놓기를 바라며 집에 두는데 퇴근 후 집에 가면 응아는커녕 쉬도 눌러 참으며 꼬리를 치는 기쁨이를 마주하게 된다. 게다가 배변을 안 하면 사료를 제 때 먹지 않으니 밥시간이 모조리 다 꼬여버리고 밥을 굶기면 또 뒤늦게 허겁지겁 먹다가 기껏 먹인 밥을 체해서 다 토해버리고 또다시 변비가 찾아온다. 여기서 "밥을 왜 굶겨요"라고 할 수 있겠는데, 밥을 원하는 때마다 주면 늘 밥은 자기가 원하면 당연히 나오는 것이라 생각해서 제시간에 안 먹고 요리조리 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료를 피하고 자꾸 간식만 먹으려 들고 그러면 또 식습관이 엉망이 되고...

그래서 마음 아프더라도 한 끼 정도는 건너뛰고 딱 저녁을 먹는 시간에 사료를 꺼내준다. 그런데 이렇게 굶기고 먹고가 반복하면 뭐가 찾아온다고? 바로 변비가 찾아온다. 이런 이유로 기쁨이의 아침 배변은 기쁨이와 나의 원활한 일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 나는 세상의 모든 강아지는 사료를 내려놓기만 하면 후다다닥 먹어치우는 줄 알았다. 그런데 기쁨이를 키우면서 강아지도 식탐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기쁨이는 처음 보는 사료는 몇 번이고 냄새를 맡은 다음 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할짝하고 만다. 사람이 먹는 식탁에 뛰어든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사료를 먹을 때도 조금씩 나누어서 꼭꼭 씹어서 넘긴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주시는 간식도 마다해버리니,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 엄마가 기쁨이 먹는 모습을 보시더니 "세상에.. 아주 입 까다롭고 밥 안 먹는 게 어렸을 때 너랑 아주 똑같다." 라며 감탄하셨다. 하도 안 먹는 나 때문에 젊은 엄마는 입을 꼭 다물고 음식을 통 먹질 않는 나를 안고 엉엉 울었다는데, 물론 나는 울지야 않지만 그 마음이 어떠셨을지 왠지 이해가 간다.

이 녀석의 식사시간이 되면 사료에다가 익힌 양배추와 당근, 그리고 닭가슴살을 잘게 다져서 섞어주는데 확실히 채소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후 변으로 보면 정말 확연히 보인다. 귀찮고 손이 많이 가도 아기 이유식같이 준비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내 밥보다 더 정성껏 다지고 또 다진다.



강아지와의 산책을 그저 줄 잡고 밖에 나가서 함께 걷는 거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예를 들어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길을 걷는다고 가정을 한다면, 옆 사람이 말이 없거나, 휴대폰만 바라보며 걷거나, 아니면 그저 앞으로만 마구잡이로 가거나 한다면 그대는 즐거운 발걸음으로 산책에 임할 수 있겠는가? 가끔 도보나 공원에서 강아지는 주인이랑 어떻게는 눈도 맞추고 냄새도 많이 맡으려고 표정으로 표시를 하는데 주인들은 그저 휴대폰에 시선이 고정이 되거나 통화하는데 혈안이 되어서 그저 줄을 잡아끌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기쁨이가 더 어렸을 때, 문자를 확인하거나 남편과 통화를 하며 걸을 때, 쇼윈도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기쁨이는 내가 돌아봐서 자기를 봐줬으면 하는 표정으로 온 힘을 다 해서 힘껏 웃고 있었다. 우리는 같이 걷고 있으나 나는 그 순간 기쁨이와 몸도 마음도 함께가 아니었다. 그저 몸만 함께일 뿐.. 우리는 사실 하루 종일 휴대폰을 보지 않는가. 이동하는 버스에서나, 지하철에서나, 집에 와서, 혹은 회사에서, 심지어 화장실에서까지. 그렇게 휴대폰과 함께 하는 시간은 무궁무진하고 그에 비하면 강아지와 함께 걷는 시간은 참으로 짧은 시간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시간은 100년 가까이 되지만 강아지가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봤자 15년, 보통은 10년 하고도 조금이다. 이들에게 30분은 우리의 30분과는 차원이 다른 시간이다.

기쁨이가 어렸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강아지가 아무리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은 강아지니까, 그래도 동물이니까,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말라고 말이다. 귀찮아서, 바쁘니까, 어제 좀 피곤했어서, 오늘 그냥 기분이 좀 그래서, 오늘 하루만 그런 건데 뭐 어때?라는 이유로 산책이든 뭐든 미루면 안 되는 것이라고. 얘네가 말을 못 할 뿐이지 이 사람이 지금 자기에게 집중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같이'만 있는 건지 다 알고 있다고. 얘네한테 산책은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만일 정말 자식이라면 그러시겠어요? 그리고 진짜 자식이면 태도가 자연스럽게 갑자기 확 변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강아지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똑같더라고요라고 생긋 웃으시는 선생님의 미소 속에는 강한 경고가 있었다.


쇼윈도에서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쫓아오는 기쁨이의 모습을 본 이후로 나는 산책 시 휴대폰을 꺼내지 않는다. 우리는 걷는 동안 눈도 맞추고, 말도 걸어보고, 잠시 멈춰서 쓰다듬어도 보고, 한 달음에 내달렸다가 잠시 앉아 쉬기도 한다. 지나가는 할머니들에게 인사도 하고, 좋아하는 이웃들을 만나 얼음도 얻어먹고 환하게 웃으면서 살며시 다가가 인사한다고 내밀어주는 손길에 얼굴을 갖다 댄다. 기쁨이가 한 고집을 부리면 나무라거나 힘으로 줄을 당기기도 하지만,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나면 이 녀석도 더 이상 강하게 고집을 부리지는 않는다.



잘 걷다가도 이렇게 바짝 없드리거나 혹은 멈칫하면서 나를 보고 환하게 웃을 때가 있다. 어쩔 때는 진짜 기분이 너무 좋아서 웃는 웃음이고 어쩔 때는 오늘은 더워서 힘드니 조금은 쉬어가자 하는 부탁의 미소이다. 착한 기쁨이는 싫다는 표시를 짓음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멈춰 서거나 웃으면서 코로 내 다리를 몇 번 툭툭 건드리는 것이 다이다. 강아지가 견주를 최대한 배려하면서 싫음을 표시하면 견주도 똑같이 이 아이의 부드러운 표현에 걸맞게 반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다 맞춰주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감히 개가 사람한테? 굴복시켜야지. 하면서 질질 끌고 가는 건, 마치 어린아이가 공손히 부탁을 했는데 안 된다고 거칠게 잡아끌고 가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데 예외의 순간도 있다.

기쁨이가 멀리서 친구의 향기를 맡으면, 그때부터는 앞서 말한 교감이라던지, 따뜻한 눈 맞춤 이런 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냄새가 감지된 그 순간부터 이 녀석 엄마든 아빠든 머리에서 지우고 오로지 친구를 찾기 위해 돌진하고 또 돌진한다. 사진을 보면 그 속도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한껏 말린 꼬리와 벌렁거리는 응꼬가 그의 흥분과 새 친구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준다. 2살이 되고 확실히 힘도 세지고 몸집도 커진 녀석은 마치 혈기 왕성한 남자아이가 에너지를 발산하듯이 산책 중간중간 엄청난 힘으로 줄을 당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진짜 막무가내로 잡아끌면 역시 엄마보다는 친구인 거 같아서 슬쩍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도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은 시간이 있는데 하물며 기운 넘치는 강아지는..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은 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



산책 후, 기쁨이는 이렇게나 잘 잔다. 사람처럼 똑바로 누워서 네 다리를 하늘로 향한 채 자기도 하고 납작하게 엎드려서 산책으로 인해 데워진 몸의 온도를 내리며 자기도 한다. 코도 골고, 중간중간 뒹굴 뒹굴 몸을 굴리며 자기도 하고, 친구랑 만나서 신나게 놀고 들어온 날에는 자다가도 꼬리를 치고 요란하게 잠꼬대도 한다. 자는 모습을 보아도 이 아이가 오늘 나와의 시간이 행복했는지 아닌지 보인다. 간혹 은은히 미소를 띠며 잠을 잘 때는 너무 사람 같아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강아지는 어린아이와 참 닮은 구석이 많다. 과거 유치원에서 내게 달려오고 내게 놀자고 조르는 그 아이들의 모습과 기쁨이의 모습이 너무 비슷해서 놀랄 때가 많다. 삐지는 태도도, 고집을 부리는 눈도,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 아빠가 세상의 전부이고 누구보다도 가장 따뜻한 사랑을 주는 모습도 똑같다.



기쁨이와 본 여름 하늘은 오색빛깔로 가득 차있다. 기쁨이가 우리와 함께 하는 삶도 이런 색으로 가득 차 있으면 좋겠다. 우리 부부의 삶 가운데 이 녀석이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수만 가지 감정과 경험을 기쁨이도 우리 못지않게 느끼고 있기를 바란다.




집에 강아지가 있다면, 아니면 강아지를 데려올 준비를 하고 계신다면, 이 아이들의 눈을 많이 바라봐주시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 이렇게 달려오고 꼬리를 치고 활짝 웃어 보이는 이 모습을 눈에 많이 많이 담아두시면 좋겠다. 함께 걸을 때, 말도 걸어주고, 같이 웃어도 보고, 달려도 보고, 쓰다듬어도 주고, 안아주고, 이런 사랑의 행동을 서로 교환하는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보시길. 세상이 무너져도 엄마 아빠를 쫓아올 이 아이들에게 이 정도의 사랑의 표현을 하는 건 지나친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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