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너는 나간다.
모든 반려견 전문가들은 말한다. 강아지의 문제 행동을 없애고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약은 '산책'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기쁨이를 데려오기 전부터 이 산책을 꿈꾸었다. 혹 매일 산책이 부담스러워서 걱정으로 시작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테지만, 하루 기본 20000보는 너끈히 걷는 우리 부부이기에 정말 그 산책이 몹시 기대되었다.
기쁨이는 5차 접종이 끝난 날부터 2살을 꽉 채운 지금까지 하루 3번 산책을 꼭 지켜서 하고 있다. 1살 반 이후부터는 일찍 철이 드는지 남들처럼 종종거리며 걷는 산책을 하지만 그전까지 우리 남편은 새벽 산책 후 늘 땀으로 샤워를 한 채 출근도 전에 넉다운이었다. 이웃들이 그랬다. 다들 걸어 다니는 가운데 저 멀리서부터 폭풍처럼 내달리는 성인 남자와 강아지가 있다면 100% 우리 집이라고. "기쁨이 아빠는 눈이 거의 풀려서 의지와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달리시던데요?"
작은 강아지가 달려봤자..라고 갸우뚱하실 수도 있는데 이 녀석.. 웬만한 중형견은 아주 쉽게 따라잡을 만큼 타고난 달리기 선수다. 놀이터를 가면 모든 분들이 숨 죽이고 기쁨이의 질주를 감상하시곤 한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말하는데 흰색 원 밖에 보이지 않는다.
기쁨이는 실내보다 외부를 훨씬 좋아한다. 풀냄새, 꽃냄새, 다른 친구 쉬. 응아냄새(제일 싫다), 흙냄새 등등 자연에서 냄새 맡는 것을 즐긴다. 마음에 드는, 혹은 알고 있는 친구 냄새라도 맡으면 무섭게 질주하며 어딘가를 걷고 있을 그 친구를 따라잡겠다는 일념으로 나를 끌고 500m가량 무서운 속도로 내달린다. 내가 이 속도를 이겨내기 위해서 거의 매일 헬스도 한다. 헬스장에서 어떤 여자가 혼자 30분을 죽어라 뛴다면 그건 분명 나다. 나의 러닝은 건강보다는 강아지 산책을 위함이 더 크다.
위의 사진은 힘차게 달리고 달려 내 다리가 다 풀려 주저앉은 걸 보고도 집에 안 가겠다고 버틴 채 살인미소를 날려보는 기쁨이다. 8kg가 버티는 힘은 생각 이상으로 대단해서 결국 나는 항복하고 다시 길을 걷곤 한다.
힘들면 그냥 안 나가면 되지 않나요?라는 질문들도 종종 주변에서 하시는데, 나가지 않으면 그 순간 나는 편하지만.. 에너지 발산을 하지 못 한 기쁨이는 그 스트레스를 집안 물건을 하나하나 도장 깨듯 망가트리며 해소한다. 드라이기 3개, 청소기 콘센트, 벽지, 하드커버 책, 반찬통, 비타민 통(사람용) 등등은 모두 기쁨이의 입을 거쳐서 처참히 망가졌다. 이 시점에서 말씀드리지만 그래도 다른 집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다. 대형견 가정인 우리 이웃은 너덜 너덜한 장판과 벽지, 그리고 소파를 그냥 받아들이고 사신다. 그에 비하면 기쁨이 정도는..^^ 감사하며 살아야지.
또 다른 이유는 배변이다. 철저히 실외배변견으로 성장한 기쁨이는 집에서는 절대로 배변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가지 않으면 방광이 터지기 직전까지 눌러 참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우리 강아지의 방광건강과 변비해소, 균형 잡힌 식사습관을 위해서라도 나가야만 한다.
강형욱 유튜브에서 비숑이 나온 적이 있는데, 그 프로에서 그랬다. 집은 거의 잠만 자는 곳일 뿐 한 번 밖에 나가면 들어오지 않는 느낌으로 키우면 집에서 세상 얌전한 비숑이 된다고. 이거 진짜다.
만일 집에서만 키우시면 무언가를 물어뜯거나 비숑타임이 시도 때도 찾아오는 비숑으로 성장할지 모른다.
산책이 끝나면 기쁨이는 책 읽는 내 무릎에서 늘어져라 잠을 자거나 침대에서 두 발을 가지런히 모은 채 잠이 든다. 이제 쭉 잘 줄 알지? 이 녀석 기운을 다 뺐다고 생각하는 건 크나큰 오판이다. 강아지의 회복력은 어린아이들 회복력과 맞먹는다. 그럼 어쩌냐고? 또.. 나간다..
위 사진 속에 날아가는 애가 기쁨이다. 대략 3시간 낮잠 후, 늦은 오후의 모습. 기쁨이가 제일 좋아하는 유치원에 가면 이 녀석에게 나는 안중에도 없다. 빨리 목줄 풀라고 난리치고 풀고 나면 내달린다. 다른 강아지들은 주인 곁에 있는데 우리 강아지는 유치원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주인을 머리에서 지운 채 달린다. 기쁨이가 떴다 하면 슬렁슬렁 다니던 다른 강아지들도 마치 각성한 듯 눈이 돌아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 보니.. 땅에 발을 제대로 딛고 있는 사진이 없구나. 우리 똥강아지.
유치원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잠깐 들러서 노는데, 지난 일요일 내달리고 또 공중을 날아올랐던 기쁨이가 코너링을 하는 순간 갑자기 멈췄다. 그러고는 절뚝절뚝. 머리가 순식간에 새하얘지는 기분. 단 한 번도 뒷다리를 절었던 적이 없는데 확실히 기쁨이는 다리를 절뚝이다 주저앉아버렸다. 슬개골탈구인가, 십자인대 파열인가, 머릿속이 뱅글뱅글.
다음 날, 눈 뜨자마자 간 병원. 절뚝이느라 쉬도, 응아도 10시간 이상을 참고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떨고 있을 때, 선생님의 진료가 시작됐다.
뒷다리를 만져보시던 선생님의 첫마디는 " 이야.. 너 이 녀석 근육이 장난이 아니네! 이렇게 근육이 많으니 무섭게 뛸 만하다"였다. 진단명은 그냥 염좌 및 근육통. (-_-) 근육맨들이 헬스장에서 힘의 한계를 믿고 200kg 무리해서 들어 올리다 다치는 것과 같단다. 어찌나 헛웃음이 나던지. 우리가 기쁨이를 너무 단단하게 키웠나 보다. 넌 치타가 아니란다..
진료 후, 온전히 모처럼 운동 없이 푹 쉬었던 기쁨이. 그다음 날인 오늘. 지금 정확히 오전 9시 50분에 우리가 뭐 하게. 또 나왔다... 남편과의 새벽 산책 때, 언제 아팠냐는 듯 남편을 잡아끌고 이리저리 다니다 들어온 기쁨이는 기력이 남아도는지 나를 끌고 다시 나왔다. 그래도 아프지 않은 게 어디인가. 오늘도 우리는 또 나가고 또 걷는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