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반려견은 애완견이 아닌 가족입니다.

기쁨이가 양가 모두에게 가족이 되기까지.

by forever Young


이 연재의 첫 장에서 말했던 것처럼 기쁨이가 오게 된 경위는 우리 남편이었다. 결혼했을 때부터 강아지가 있다면-을 종종 농담처럼 말했던 우리는 정말로 이 농담과도 같던 말을 실행에 착착 옮겼다.

결혼한 지 딱 1주년이 된 시기에 솜털을 흩날리면서 내 품에 안긴 기쁨이는 우리 부부에게는 너무 크나큰 행복이자 이름 그대로 기쁨 그 자체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모두 양가의 부모님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 모든 일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사실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둘 다 성인이고(심지어 불혹을 앞두고 있는..) 이제 내 가정에서 내가 키우겠다는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된 단 말인가.


우선 우리 친정식구들은 강아지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특히나 내 동생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너무 사랑해서 길을 갈 때도 남의 강아지 한 번이라도 만져보는 게 소원일 정도이고, 동네 굶주리는 길고양이들을 위해서 츄르를 보물단지처럼 꼭 한 두 개는 가지고 다닐 정도로 엄청난 동물애호가이다. 부모님의 경우 두 분 다 어린 시절부터 강아지와 함께 살았고, 외갓집 정원에는 늘 하얀색 백구가 나를 맞이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랑 동생 키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강아지까지 돌보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늘 못을 박았기 때문에 나는 성장하면서 강아지를 키운 경험이 없었다. 우리 엄마는 요즘 말로 말하자면 쌉T인 분이시다. 뭐든 명확해야 하고, 두리뭉실하게 말하는 걸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시며 어떤 일을 행하던 그 원인과 결과가 확실해야만 수긍을 하는 분이다. 엄마가 가장 큰 변수일 것을 너무 잘 알았던 나는 우선 강아지 노래를 부르며 30년 이상 살아온 동생에게 기쁨이의 존재를 알렸다. 카카오메시지로 강아지 사진을 확인한 동생은 [이거.... 얘.. 언니가 키운다고????? 아니!! 엄마 알아?? 엄마 알고 데려온 거야??] 바로 엄마 반응부터 물었다. (대충 이것만 봐도 절대 쉬운 엄마가 아니라는 걸 아실 수 있을 것이리라.) 동생은 엄마의 반응을 몹시 걱정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빨리 이 작은 솜뭉치를 보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눈치였다. 그리고 기쁨이를 처음 대면했을 때, 동생의 눈에서는 이미 하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품에 꼭 끌어안고서 인사를 하고 또 하는 내 동생은 이 날 처음으로 형부 앞에서 환하게 웃었다. (내 동생도 쉬운 처제는 아니었으므로..)


엄마는 눈치가 백 단이다. 역시 엄마는 엄마다. 두 딸내미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로 속닥거리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이상했는지 동생을 슬쩍 추궁한 모양이다. 어느 날, 낮에 웬일로 엄마가 전화를 직접 하셨다. 전화를 받자마자 [너!!! 너 강아지 키우냐? 대체 어쩌려고?] 속사포로 뭐라 뭐라 말이 쏟아져 내 귀로 들어온다.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내 나이가 이제 곧 40인데, 이런 선택 하나도 부모님 허락을 받아가면서 해야 하는 것인지. 긴 대화 끝에 [몰라- 네 인생이고 너도 이제 가정이 있는 몸이니 네가 알아서 해]하고 전화를 확 끊어버리는 엄마.

워낙 강아지도 좋아하고 누구보다도 자타공인 큰딸 바보인 우리 아버지는 [강아지는 예쁘다고 데려오는 게 아니라 책임을 지고 데려오는 거다. 그거 알고 데려온 거지?] 하면서 우려 섞인 말을 한마디 하실 뿐, 이후로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한 편, 남편은 남편대로 시댁에 강아지의 존재를 말했다가 어머니랑 전화로 한바탕 하고 끊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과거 남편이 어렸을 적에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으시고, 그 강아지가 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넌 이후로는 강아지를 키우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아마도 그 상실감이 어떤지, 그리고 얼마나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기에 그러셨으리라. 그러나 남편도 나랑 비슷한 생각이었다. 부모님과 사는 것도 아니고, 남편에게는 나와 함께 일군 새로운 가정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선택을 하던 그건 부모님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말이다.


두 어머니에게 흠씬 잔소리로 두들겨 맞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기쁨이는 그저 우리 곁에서 데굴데굴 잘 놀았다. 심란했던 우리 마음도 그 모습을 보니 스르르 풀어졌다. [걱정 마! 기쁨아 우리는 너를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데려온 것이 아니니 반드시 끝까지 책임을 질 거야]


몇 주 정도 시간이 지난 뒤, 기쁨이는 처음으로 서울숲 친정을 방문했다. 번을 누르고 현관을 열 때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차 안에서부터 마음을 다잡고 다잡었건만, 엄마는 어떤 얼굴로 기쁨이를 바라볼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현관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얼굴은, 당장에 기쁨이를 자기 품에 안고 싶어서 혈안이 되어있는 동생의 상기된 얼굴, 생각보다 덩치가 있고 덩치에 맞지 않게 순둥순둥한 기쁨이의 표정에 미소가 번진 아버지의 얼굴, 그리고 '쉽게 정을 내주지 않으리라!'라는 결심에 사로 집힌 눈과 기쁨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씰룩이는 입가를 미처 숨기지 못 한 엄마의 얼굴이었다. 온 집 안을 돌아다니고 냄새를 맡고 킁킁거리는 기쁨이. 기쁨이는 살금살금 엄마의 냄새를 맡고, 아빠의 품에도 들어가 보고 하면서 조금씩 이 새로운 구성원에 익숙해졌다. 말랑말랑한 기쁨이를 엄마는 조심스럽게 안아보면서 [너너 요 녀석. 네가 기쁨이야?]하면서 웃었다. [강아지는 절대! 안돼!]했던 엄마는 어디로 가고 기쁨이가 엄마 슬리퍼를 깨물어도, 부엌의 발매트에 쉬를 해도 엄마는 세상 너그럽게 [아직 아가잖아.]하며 넘어가셨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너 할머니는 쉬운 사람 아니다. 우리 집에서 소파나 침대는 절대 못 올라온다" 름장을 놓으셨다. 그러나 기쁨이가 구석진 거실 바닥이나 부엌 바닥에서 쭈구리가 된 채 잠이 들면 그때마다 소파에 올라와서 편히 자라고 하는 것도 엄마였다. 엄마는 이 작은 생명체를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을 한 듯했다. 사실 기쁨이의 그 아련한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그 누구도 쉽게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다.ㅎㅎ

시댁의 첫 방문은 훨씬 쉬웠다. 시어머니는 연신 '기쁨아~기쁨아~'하며 기쁨이를 쓰다듬으셨고, 아버님은 기쁨이를 꼭 끌어안아주시거나 쓰다듬어주시면서 허허 웃으셨다. 기쁨이는 시댁에만 가면 꼭 아버님 침대에 뛰어올라서 아무도 몰래 혼자 쉬를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뗐다. 나중에 [기쁨이 여기에다가 쉬를 했구나!] 하는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리면 얼마나 난처했는지 모른다. 사할 때, 식탁에 달려들지도 않고 곁에 엎드려서 새근새근 잠을 자는 기쁨이를 보고 어머니는 감탄 또 감탄하셨다, 어쩜 강아지가 이렇게 예의가 바르고 얌전하냐며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제 기쁨이는 기쁨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려 2명씩이나 있는 행복한 강아지이다. 기쁨이가 방문한다고 하면 우리 엄마는 미리 물그릇에 시원한 물을 떠다 놓고 배변패드를 깔고 아주 소량의 고구마를 준비하신다. 내가 없을 땐 기쁨이랑 함께 나란히 낮잠을 주무시기도 하고 서울숲에 나가면 나 대신 목 줄을 잡고 산책을 하신다. 아빠는 기쁨이한테 특히 장난을 많이 치시는데 그때마다 기쁨이는 우리 엄마를 보며 [할머니 나 좀 구해줘봐 바요] 표정을 짓는다. 얼마 전 구슬을 꿰어 기쁨이의 새 목걸이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사진 메시지를 확인한 엄마는 목걸이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하고 [그 구슬 나중에 기쁨이 홀랑 먹지 않게 조심해라. 나머지 구슬 잘 둔 거 맞지?]라고 재차 강조한다. 엄마 눈에는 목걸이 귀여운 것보다 기쁨이의 안전이 최우선인 듯하다. 이제 엄마는 서울숲에서 비숑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애견 관련 유튜브를 시청하시면서 시시때때로 내게 전화나 문자를 하신다. 영양제는 먹이는지, 사료는 어디 브랜드를 먹이는지, 알레르기는 좀 어떤지 등등. 엄마는 거의 도치할머니 수준이 다 됐다. 동생은.. 그녀의 기쁨이 사랑은 무궁무진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선물로 보내준다. 기쁨이가 온다고 하면 집순이인 동생은 아침 일찍부터 모든 준비를 마친 채 경건한 마음으로 기쁨이를 기다린다. 게다가 어색해서 말 한마디 섞지 않던 형부와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 (물론 주제는 기쁨이다)

지금은 알레르기 때문에 먹지 못 하지만, 기쁨이 간식을 1년 치는 보내주셨던 시어머니, 그리고 기쁨이가 곁에 다가오면 손으로 쓰다듬어주시고 따듯하게 바라봐주시는 아버님까지. 기쁨이는 우리 모든 가족들의 큰 기쁨이자 사랑 그 자체다.


너는 없어서는 안 될 우리 모두의 가족이야.

여동생의 무한한 사랑
외할아버지 품에서 꿀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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