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리 Jul 24. 2022

신입 치과위생사. 텃세에 시달리다.

6개월을 시달리다

나의 첫 직장은 훌륭한 곳이었다. 내 평생 만나본 선생님 중에 가장 좋은 선생님이었던 원장님. 착하고 좋은 실장님.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 다양한 진료 경험. 원장님의 올바른 소신. 

첫 직장으로써는 지금 돌아봐도 완벽한 곳이고, 아직도 그곳을 나온 게 아쉬울 정도인 곳이다. 

하지만, 처음 6개월 나는 찍혔다. 

나를 찍은 분은 5년 차 팀장님. 지금 보면 다 도찐개찐인데 그 당시에는 하늘과 같은 연차에 직함도 어려운 팀장님이었다. 

처음 시작은 환자한테 설명하는데 '목소리가 크다'였다. 내 목소리가 큰 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두 번째는 사투리. 평생을 지방에서 보냈는데 올라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지적당했지만 모두가 표준어를 쓰니 노력했다. 사실, 나는 내가 표준어 비슷하게 쓰는 줄 알기도 했다. 

세 번째는 슬리퍼 소리가 크다고 지적받았다. 거슬릴 수 있으니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슬리퍼도 가벼운 걸로 바꾸고 살금살금 걸어 다니려고 노력했지만 워낙 바쁜 치과여서 쉽지 않았다.

네 번째는 앉아서 하는 일 모든 걸 못하게 했다. 치과에서는 앉아서 재료를 만든다던지, 정리를 한다던지 하는 업무가 있을 수 있는데 내가 그런 걸 하고 있으면 기구 설거지를 시키던지 밖에 진료를 보내던지 해서 한시도 앉아있지 못하게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나와 동급인 1년 차 아이를 옆에 앉혀놓고 웃고 이야기하며 그랬다는 게 속상했다.

나중에 친구한테 듣고 보니, 내가 인상이 쎄 보여서 저런 애는 기를 죽여놔야 된다고 했단다. 어쩐지 그 친구와는 늘 웃고 떠들면서 나만 잡더라니. 따지고 보면 그 친구도 사투리 쓰고 그랬는데. 아빠 닮은 내 얼굴이 문제였던 것이다.

다섯 번째 원장님이 지시한 업무를 내가 하면 될지 안 될지 몰라서 어리바리 탄 적이 있는데 온 진료실에 소문을 냈다. 스스로 할 수 없게 사사건건 간섭은 본인이 했으면서 내가 어리바리 타니 금세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그 뒤로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매일이 거의 이랬는데 어느 날은 혼나고 나서 점심시간에 동기들과 앉아서 이야기하다 울게 됐다. 그래서 눈이 좀 부었는지 점심시간이 지나고 진료 준비를 위해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그 팀장이 다가와 물었다.

'어머 울었니?'

라고 물었다. 운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아니라고 대답했더니

'나는 나 때문에 운 줄 알았다~'며 비웃는 투로 이야기하는데 이게 상처가 좀 됐는지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남는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이 정도이지만 사사건건 쪼았던 기억이 난다.

매일 저녁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 옆 바닥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안 나게 눈물만 줄줄 흘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 그 팀장님은 임신 중이었고 많이 힘들어서 더 거슬렸나 보다. 그 팀장님은 6개월 후 출산하러 가셨고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여담으로 듣고 보니 돌아오고 싶다고 했으나, 내가 반대해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이러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다짐했고 지금까지 지키려 노력한다.


작가의 이전글 치과 면접에서 키와 몸무게를 물어보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