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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Aug 06. 2022

투명인간이 되었던 대학병원 실습 생활

치위생과를 선택했던 게 뼈저리게 후회됐던 대학병원 실습

대학병원은 실습은 추운 겨울이었다. 교수님이 있는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어 교수님이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될 수 있다는 기대와 큰 병원이라 두렵고 긴장되는 마음이 반반쯤 섞여있었던 것 같다. 

대학병원 실습은 우리 학교 이외에도 여러 학교의 치위생과에서 실습을 나와 다양한 실습복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여차저차 해서 시작한 실습. 말은 실습이지만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뒤에서 진료를 보고 자잘한 심부름 정도만 할 수 있다. 사람이 많은 일을 하면 가장 힘들 것 같지만, 느낀 바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이 바쁜 상황 속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가장 불편하고 힘든 상황이었다.


대학병원은 특성상 과가 많아서 여러과를 돌면서 실습을 하는데 치주과 실습할 때였다. 

여기에는 아주 오랫동안 근무한 조무사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은 아침에 출근하면 큰 머그컵에 커피를 한가득 타고는 하루를 시작했다. 항상 여유가 넘쳤으며 인턴, 레지던트 의사들과 친했고, 치과위생사 선생님들조차 꼼짝 못 하는 그런 분이셨다. 학교를 다니며 배운 바 치과위생사의 자존감이 높은 직업으로 인식이 되어있으나 실제로 겪은 분위기는 치위생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학생들은 간단한 진료보조와 진료가 끝난 후 진료기구 정리, 기본 물품 채우기 정도를 했다. 그러다 환자가 없으면 계속 멀뚱히 서있어야 했다. 치주과에서는 누가 우리를 챙겨주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 그래서 눈치껏 뭐라도 하려고 쓰고 난 기구를 씻으려고 고무장갑을 끼려 했더니 간호조무사 선생님께서 '누가 너희보고 이런 거 하래?' 라며 무안을 주며 본인이 뺐듯이 설거지를 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잇몸 수술 환자가 왔는데 진료보조를 서 줄 선생님이 없는 상황이었다. 한 의사 선생님이 조무사 선생님에게 '여기 좀 도와줘~'라고 말하니 조무사 선생님이 실습생들이랑 하라는 투로 이야기했는데 의사의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 애들이랑?' 

그중에 나도 있었다. 어찌나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던지.

치위생사가 된 이후에 치주수술을 학생이랑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게 이해가 되지만 그렇게 되놓고 앞 까기를 할 필요까진 없진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들도 시작하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한마디 해주고 싶다. 니들은 날 때부터 잘했니?

대부분의 시간을 투명인간과화 되어 있었고, 쓸모없는 인간이 들게 해 주었던 사회생활의 기본을 느끼게 해 주었던 실습 생활이었다.


실습 중 여러과를 돌며 느낀 바는 위생사의 역할이 별로 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한 과는 엄청 바쁜 상황인데 진료보조는 실습생들이 위주로 섰고 위생사 선생님은 본뜨는 재료 정도 준비해주고 가서 책을 읽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상황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가는 선생님들을 보고 실습생인 내 앞에서 하는 일이 없다는 둥 어쨌다는 둥 호박씨를 까는 의사들이었다. 그들의 말이 기억에 남아 쓸모없는 직업을 선택한 것 같은 느낌이 다시 한번 들었다. 


교수님들의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도 살짝 충격이었다. 교수님을 학교에서 볼 때는 위엄이 있고 아는 지식이 많은 커다란 분이었으나 치과의사 교수님 옆에서는 어쩔 줄 몰라하며 전전긍긍하는 직원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물론, 배운 바도 많았다. 다른 학교 실습생들이 어떻게 행동했을 때 인정을 받는지, 선생님들이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사회생활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전반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기회이긴 했으나, 내가 선택한 이 과가 이 직업이 무엇인지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며 앞으로 내가 할 일에 대한 회의감이 진하게 들었다.


치과위생사.

위생사란 말은 도대체 무엇인가? 위생을 책임지는 사람이란 말 아닌가? 나는 치과 청소부가 된 것인가? 하녀가 된 걸까? 비싼 등록금을 내고 허드렛일을 하려고?라는 생각으로 실습을 나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전과를 해야 하나 다시 수능을 봐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었었다.


하지만, 직접 사회생활을 해본 결과 실습생 때와 결코 같지는 않으니 혹시라도 치위생과 진학을 고민하시는 분이라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좋은 선생님들과 원장님들도 있고 내가 겪은 바로는 대학병원 실습 때만큼 하찮아진 적은 지금까진 없었다. 유달리도 추웠던 실습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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