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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Sep 18. 2022

다시 돌아간다면 치과위생사를 선택할래?

밤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다시 돌아간다면 치과위생사를 선택할까?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었다. 첫 아르바이트는 시급 2200원에 불낙(불고기 낙지)을 파는 식당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의 소개로 처음 시작한 아르바이트였는데 친구의 말로는 사장이 엉덩이를 터치하는 등 성희롱도 있었다고 한다.

불낙을 담는 항아리 뚜껑 같은 그릇은 엄청 무거웠고 손님도 많았다. 

한 달 반 정도 한 후 그만두었다. 그 후 방학 때 새로운 아르바이트에 도전한다.

이번에는 방학 동안 옷가게 직원으로 취업을 해서 아침 10시~저녁 10시까지 12시간 근무에 일주일에 한 번 쉬고 점심, 저녁을 주는 한 달에 80만 원 급여를 받는 일이었다.

당시에 80만 원은 꽤 쎄 보였다.

하지만 12시간 동안 서서 일해야 했고 밥만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으며 무서운 언니들이 있는 그곳은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밥 먹는 시간 30분씩 두 번 빼면 11시간 동안 한 번도 못 앉고 서서 일하다 보면 밥을 아무리 잘 먹어도 살이 쭉쭉 빠진다. 밤 10시에 퇴근할 때 진한 투샷 커피를 마셔도 곯아떨어지고 20분 걸려서 집에 걸어가면 하루가 이미 끝나 있었다.

그래도 힘들게 일을 끝내고 퇴근할 때 추워서 손이 얼얼한데도 진하고 달콤한 모카를 마시고 집에 걸어가는 길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와 비슷하게 거의 3년을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반복하며 살았다.


그러다 첫 취업을 하게 되었는데 주 5일에, 야간진료 한번, 퇴근은 7시였다. 월급도 130만 원으로 80만 원보다 훨씬 많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취업을 하니 상대적으로 너무 좋은 조건으로 느껴졌다. 

주 5일에 퇴근 후 자유시간까지 즐길 수 있으니까.


나의 첫 치과생활은 좋은 원장님을 만나 마치 교수님께 돈을 받고 배우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나 즐거웠다. 물론 마냥 즐거웠다는 것은 아니다. 앞의 에피소드를 보면 텃세도 있었고 쪼그라드는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 유일한 스승이라고 할 만한 존경할만한 어른을 만난 것과 좋은 친구를 만난 것 둘 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 이후 처음으로 무언가를 위해 공부하고 싶고 열정이 느껴졌던 일이었던 것 같다. 치과일은 집안일처럼 세세한 일부터 환자를 상담하는 일, 진료까지 범위가 넓기 때문에 배울 분야가 무궁무진했고 거의 모든 일이 힘들지만 재밌었고 더 배우고 싶고 성장하고 싶게 하는 유일한 일이었다.


다만, 몇 가지 걸리는 점은 있다.

치과위생사와 조무사의 경계가 없는 업무 범위, 거의 없지만 치과위생사를 하인처럼 대하는 태도를 가진 의사들, 화장실 청소 등과 같은 일, 한정된 급여, 텃세 등은 아쉬운 점이다.

치과위생사를 조금 더 전문인력으로써 우대해주고,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등 인륜지대사에 관련된 부분에 관대해졌으면 좋겠고,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연차 기준을 지켰으면 좋겠다.

그냥 법적으로 회사에서 해 주는 만큼만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다행히도 요새는 인력난이 심해서인지 조건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런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제외하면 나는 다시 치과위생사를 선택할 것 같다. 

돌아보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으며 지금도 육아를 하며 치과 이야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걸 보니 나는 치과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치과에 트라우마가 있어서 덜덜 떨면서 울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어느새 커서 치과 이야기를 하는 어엿한 치과인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치과 경험담이다. 치과위생사가 궁금하거나 치과인들의 생활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기를 바라며, 치과위생사가 조금 더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는 직업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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