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엄마 처방전

1-10 강도가 점점 세지는 사춘기의 수위

by 김미영

어느 인생 선배와의 대화 내용이다.

“아이가 엄마보다 키가 커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춘기 행동이 시작될 거야.”

“어떤 식으로?”

“음! 그러니까 일단 엄마를 쳐다볼 때 눈을 내리깔고 얘기하는 게 그 시작이지.”

“그런 다음?”

“음! 그다음으로는 엄마가 하는 말은 거의 다 무시한다고 보면 돼.”

“그럼, 엄마 입장에서 무척 화나잖아.”

“그렇겠지. 그런데 엄마가 화를 내면 아이는 더 불같이 화를 내.”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아이마다 다르긴 한데, 나 같은 경우는 그냥 무시했어.”

“와우! 거의 도 닦은 스님이네.”

“아이도 엄마 말을 거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걸. 만약 아이와 일일이 다 대응하게 되면 스트레스받아서 오래 못 살아.”


큰아이가 본격적으로 사춘기를 겪으면서 예전, 이 선배의 말이 진정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당시 우리 아이는 초등학생이었고, 그 선배의 아이는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얘기가 나에게는 그냥 먼 얘기로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이 선배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바라건대 그 고난의 시기를 잘 극복하고 지금쯤 아이랑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내 상황도 거의 비슷했다. 어느 순간 아이가 내 키를 넘어서면서부터 말투도 조금 이상해지고, 왠지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그러고 말겠지 싶었는데 하루 이틀 지날수록 강도는 더 세져만 갔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 따끔하게 혼을 냈는데 무서워하기는커녕 그냥 무시하는 게 아닌가! 정말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쁘고 분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런 대접을 받고 살아야지? 지금까지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후유! 그냥 한숨만 나왔다. 앞으로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시비를 붙이기 시작했다.


“밥 먹으렴.”

“…….”

“안 들려? 밥 먹으라고 했잖아.”

“나한테 언제 얘기했어요? 나는 하나도 안 들렸는데. 그리고 내가 언제 밥 먹고 싶다고 했어요?”

“그럼, 밥 안 먹을 거야?”

“네.”

“도대체 왜 안 먹는데?”

“맛있는 게 없어서요.”

“어휴! 그럼, 어떻게 맨날 네가 좋아하는 것만 먹니?”

“그럼, 앞으로 밥 안 먹을게요.”

“너 도대체 왜 그러는데? 정말 답답해 죽겠다. 너도 나처럼 이런 일을 당한다고 한번 생각해 봐. 아마 병 나 죽을 것이다.”

“내 방에서 나가세요.”


이후 대화는 아니, 대화보다는 언쟁이 맞을 수도 있겠다. 계속해서 언쟁을 벌이다가 큰소리가 나가고, 결국 서로가 다시는 말 안 할 것처럼 등을 돌리는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어떤 때는 아예 말을 안 하고 살고 싶었지만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하루에도 수십 번 부닥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도 했다. ‘부모는 아이를 원해서 낳았지만 자식은 결코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자꾸만 어긋날 수도 있겠구나.’라고.


물론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심각한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의 부모로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게 마련이다. 사실 눈을 내리깔고, 시비를 붙이고, 무시하는 일 등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을 뿐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거실에서 아이와 내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너무 분에 겨웠는지 자기 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그때 나도 너무 화가 나서 다시 아이의 방문을 열려고 했고, 아이는 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세게 밀었다. 나도 힘이 만만치 않은지라 있는 힘을 다해 밀어붙인 결과 문에 틈이 조금 벌어졌고, 이때다 싶어 얼른 그 틈을 비집고 머리부터 집어넣다가 안에서 다시 세게 미는 바람에 하필이면 얼굴이 문틈에 낀 적이 있었다. 그때 얼마나 아프던지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과 둘째 아이도 너무 놀란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야말로 내 인생에 있어서 아주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아이가 아직 어리고,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지다 보니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자해를 하기도 했다. 주로 엄마인 나하고 승강이를 벌이다가 홧김에 자기 손목 안쪽을 자로 긁는 일이었다.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강한 엄마인 척 태연하게 반응을 했지만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었다. 정말 마음이 아팠던 건 어느 더운 여름날, 아이가 팔이 다 드러나는 반팔 티셔츠를 입었는데, 그때 팔목에 새겨진 흉터가 내 가슴을 마구 후벼 팠다.


아이와 내가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또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와 난 ‘아’ 다르고 ‘어’ 다른 문제로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사실 누구 한 사람 양보하면 될 일을 누가 이기나 끝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서로가 악이 받쳐 있었다. 그때 이를 지켜본 아이 아빠와 동생까지 상식을 뛰어넘는 큰아이의 행동에 분노를 했고, 그 상황에 난 큰아이를 끌고 아이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 다음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좀처럼 타협점을 찾을 수 없었고, 분노로 가득 찬 아이의 눈빛은 더욱더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 순간 아이는 열려 있는 창문으로 급하게 향했고, 아차 싶었던 난 얼른 뒤따라가서 아이의 옷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리고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창문으로 뛰어내리려는 아이를 잡아끌어 침대로 내동댕이쳤다.


아이는 침대에 엎드린 채 마치 사나운 짐승이 포효하듯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동안 표현하지 않았던, 아니 표현 방법조차 몰랐던 꾹꾹 참아왔던 감정 덩어리를 모조리 토해내는 듯했다. 난 나보다 덩치가 큰 아이를 끌어안고 울고 싶은 만큼 다 울어버리라고 토닥였다. 그렇게 그날 밤은 아이와 나에게 있어서 평생 잊지 못할 잔인한 밤이었으리라. 벌써 3년이 지난 지금, 아이한테 그때 얘기를 꺼내면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내가 얼마나 겁이 많은데 뛰어내리겠어요. 난 아픈 거 정말 싫거든요.” 우리나라 가요 제목에도 있듯이 ‘세상은 요지경’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가끔 부모는 키가 훌쩍 커버린 중학생 아이를 보면서 다 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지 몸만 컸을 뿐 생각은 어린 아이다. 16살! 기껏 경험이라고 해봐야 학교, 학원, 집에서의 생활이 전부인데, 부모는 이러한 아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바란다. 따라서 아이들이 느끼는 부담감과 압박감은 결국 자신을 학대하는 방법으로 나타나곤 한다. 부모는 아이와의 소통을 통해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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