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엄마 처방전
1-9 잠만 자는 방 안의 괴물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있지만 잠만 자는 방 안의 괴물도 있었다. 늘 잠에 취해 사는 바로 우리 집 큰 아이다. 하교 후 집에 와서 간식을 먹은 후 잠자기 시작하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잠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버린다. 그러니 아이한테는 당연히 저녁쯤에 가야 할 학원이 지옥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아이를 깨워야 하는 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아이가 낮잠을 참아내지 않는 이상 이 악순환의 고리는 도저히 끊어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야행성이다. 오후에 잠을 자고 이른 새벽에는 말똥말똥해지는, 정말이지 미치고 환장할 신체적 리듬이었다.
가족들이 깨어 있을 때 아이는 자고 있고, 가족들이 자고 있을 때 아이는 홀로 깨어 있다. 그러다 보니 함께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고, 관계도 점점 어긋날 수밖에 없었으리라.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고 다들 꿈속 세상으로 빠져들 무렵, 아이는 혼자 거실로 나와서 컵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냉장고를 뒤지고, 음악을 듣는 등 굳게 닫힌 방 안에서 혼자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있곤 했다.
그렇다고 이미 형성된 그 신체적 리듬을 바꾸라고 할 수도 없는 일! 가능한 한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와 부닥치지 않으려고 그냥 조용히 지냈다. 그런데 문제는 잠자고 있는 아이를 깨울 때였다.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다가 2∼3시쯤 잠이 들면 당연히 아침엔 몸이 천근만근 이리라. 그래서 시간을 넉넉히 잡고 깨워야만 했다. 그것도 그냥 “일어나!” 하고 말만 하는 게 아니라 가능한 한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도록 등을 긁어 주는 등 가려운 곳을 긁어 주면서 깨웠다.
“아침 7시다. 이제 일어나야지. 자, 등 긁어 줄게.”
“…….”
“어때, 시원해?”
“응.”
“또 어디 가려워?”
“종아리 바깥쪽.”
“…….”
“시원하지? 엄마 같은 사람이 어디 있어, 아침마다 이렇게 등도 긁어 주고, 기분 좋게 깨워 주는 사람이.”
“여기도 가려워요.”
“알았어. 지금, 7시 10분이니까 이제 일어나야 된다.”
매일매일 아이를 이런 식으로 깨웠다. 물론 바쁜 아침에 이렇게 깨우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는 최대한 인내가 필요했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와의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 다음 엄마로서 조언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공부하라고 얘기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난 아이와의 어긋난 관계를 가장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잠 깨우기’를 생각했다. 특히 모든 문제가 잠으로부터 발생했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커다란 과제였다.
하지만 기분 좋게 깨워 줘도 다 먹혀들어가지는 않았다. 기분 좋게 일어나면 정말 다행이고, 때때로 온갖 짜증을 내면서 안 일어나는 게 문제였다. 그러다 보면 결국 학원 가는 시간과 맞물려서 엄마인 나는 마음이 다급해지고, 강제로 일어나게 하려니 관계도 어긋나고, 결국 큰소리가 나오면서 아이의 방문은 또다시 "쾅" 하고 닫혀버린다. 이 같은 문제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우였다.
어느 날 저녁, 중학교 1학년 학부모 반 모임이 있었다. 저녁 식사 겸 술자리 모임이었다. 엄마들도 어두운 밤이 좋은지 낮에 만나는 것보다는 한결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술 한잔씩 걸쭉하게 들어가니까 하나하나 숨겨 놓았던 얘기 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사실 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솔직한 엄마들에게 끌렸다. 나도 물론 그동안의 힘들었던 일을 죽 얘기하면서 폭풍 수다를 떨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거의 같은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공부를 안 하는 것,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 부모한테 말을 함부로 하는 것, 방문 잠그는 것, 게임 중독, 진한 화장, 이성 친구, 학원 안 가려고 하는 것, 아이의 이기적인 마음, 정리정돈 안 하는 것, 잘 안 씻는 것, 친구 관계 등등 다양한 문제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중 나처럼 잠으로 인한 갈등이 가장 컸다.
사실 중학교 때는 갑작스러운 호르몬의 영향으로 잠이 무척 많아진다고 한다. 어른들이야 강한 의지로 잠을 이겨낼 수 있겠지만 아직 어린 중학생들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쏟아지는 잠을 참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잠에 취해 사는 아이들을 볼 때면 왠지 한심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잔소리를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아이하고의 관계가 자꾸만 틀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내 경험상으로 비추어 봤을 때, 시기가 시기인 만큼 공부에 시간을 투자했으면 좋겠는데 잠으로 시간을 다 낭비하는 것 같아 엄마로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지금 돌이켜 보건대, 그 당시 아이가 잠을 좀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이 컸지만 그건 단지 내 욕심일 뿐이었다. 아무리 얘기를 하고, 혼을 내도 쏟아지는 잠은 아이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할 때, 마음도 성숙해지고, 의지도 생겨 잠을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생겨나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잠과의 싸움! 그건 어른들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평생 극복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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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사춘기 때는 하루하루가 잠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문제가 아이의 잠 때문에 발생한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다녀야 할 학원도 늘어나고, 학교에서는 내신, 수행 평가,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등 해야 할 일이 부쩍 많아진다. 그런데 문제는 그에 정비례하여 잠도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아이의 사춘기 시기를 잘 넘기려면 엄마만의 잠 깨우기 노하우는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