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엄마 처방전
1-8 시베리아를 녹여 줄 강아지의 출현
“쉬이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까마득한 광야에 거대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살을 에는 듯 극한의 추위로 모든 게 꽁꽁 얼어붙은 시베리아를 생각해 보았는가! 그런데 그 시베리아가 우리 집에도 찾아왔다. 집안이 온통 썰렁했다. 밖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가정에서 위로받고 싶은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사춘기의 위력이 얼마나 센지 우리 가정은 점점 더 꽁꽁 얼어붙고 있었다.
아무래도 따뜻한 온기를 채워 줄 그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애교를 떨어 줄 강아지였다. 실제로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주변 엄마들 얘기를 들어 보니 가족들이 강아지를 중심으로 모여든다고 했다. 바로 그거였다. 어떻게든 뿔뿔이 흩어진 우리 가족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데다가 마침 둘째 아이가 친구들도 다들 강아지 키운다며 몇 날 며칠을 사 달라고 조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강아지를 키우기로 다 같이 합의를 한 후 동네 애견숍으로 향했다. 사실 그전에 난 유기견 보호소에 있는 상처 받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다. 그냥 그런 강아지들이 더 애틋했고, 그만큼 사랑을 더 주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과 아이들이 주저하는 바람에 애견숍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애견숍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귀엽고 앙증맞은 강아지들이 ‘나 좀 데려가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 좁은 우리에 갇혀 애처롭게 우리 가족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중 유난히 사랑스럽게 생긴 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 강아지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난 그때 다른 강아지들을 죽 둘러보면서 그저 불쌍한 마음뿐이었다. 혹시라도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강아지들은 그 미래가 어찌 된단 말인가! 아무튼 무거운 발걸음을 뒤로한 채 우리 가족은 맨 처음 눈에 들어왔던 그 강아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두 손에 다 들어왔던 작고 앙증맞은 강아지, 지금 그 녀석을 안을라치면 20㎏짜리 쌀 포대를 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얘들아, 우리 강아지 이름 뭐로 지을까?”
“그러게요.”
“결혼 전에 엄마가 키우던 쪼롱이 이름을 따서 그대로 쪼롱이라고 지을까?”
“에이! 그건 싫어요.”
“그러면 무슨 이름이 좋을 것 같아?”
“뽀삐?”
“바둑이?”
“그 이름은 너무 촌스러워.”
“자, 그럼 엄마는 무엇이든지 의미 있는 것을 좋아하니까 ‘해피’라고 짓자. 이유는 지금 우리 가정이 너무 우울하잖아. 그러니까 해피가 앞으로 우리 가정에 행복을 전해 준다는 의미로 ‘해피’라는 이름이 제일 좋을 것 같아.”
“그래요. 그럼 우리 앞으로 ‘해피’라고 불러요.”
그렇게 해피는 사랑스러운 우리 가족이 되었다. 언제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반겨 주는 해피를 보면서 전에 없었던 미소가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물론 굳게 닫혀 있었던 큰아이의 마음의 문은 쉽게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사랑스러운 해피가 우리 집에 있음으로써 느껴지는 따뜻한 분위기, 마음의 위안 등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분명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결혼 전에도 퍼그라는 강아지를 키웠는데, 강아지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모여 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었다.
먹이고, 씻기고, 털 깎아 주고, 발톱 깎아 주고, 똥 치워 주고, 오줌 치워 주고, 가끔씩 산책시켜 주는 등 강아지 한 마리 키우는 게 갓난아기 키우는 것과 거의 맞먹는다. 매일매일 정성껏 키웠다. 아이에게 갈 사랑을 해피한테 다 쏟아부은 것 같았다. 어디가 아파도, 무언가 못마땅해도, 불평불만 없이 항상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강아지를 보면서 내 마음은 더욱더 애틋해졌고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시베리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아이와 내가 부닥치는 것은 학원 문제였다. 학교는 군소리 없이 가는데, 학원은 가기 싫은지 자꾸만 빠지려고 했다. 그러다가 화목반, 즉 화요일과 목요일에 가야 하는 수업을 빠질 경우, 번거롭게 수요일이나 금요일로 옮겨야 했고, 아예 수업을 다른 요일로 옮길 수조차 없을 경우엔 그에 따른 학원비는 고스란히 허공에 날리는 셈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학원비를 거론하면서 아예 그만두라고 윽박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스트레스가 정말 엄청났다. 따라서 아이한테 큰소리를 치게 되고, 나아가 심한 욕설까지 퍼붓는 등 아이와 한바탕 난리를 쳐댔다.
해피도 이런 집안 분위기가 파악되는지 큰아이한테는 접근하지 않았다. 정말 웃긴 건, 조용한 집에 뭔가 분란이 생길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해피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뒤 “해피야! 해피야!” 이름을 부르면서 찾으면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 있다. 여하튼 그런 해피의 모습이 더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을 다소 잠재워 준 역할도 했다.
지금 해피는 3살이다. 처음 우리 집에 올 당시만 해도 생후 4개월 된 아기였는데, 지금은 다 큰 성견이 되었다. 너무 순하고 착해서 가족들의 사랑을 거의 독차지할 정도로 예쁨을 많이 받는다. 사실 그동안 먹을 것을 너무 많이 줬더니 가리지 않고 먹다가 돼지 강아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간혹 옆으로 누워 있는 등 쪽을 보고 있노라면 탱글탱글한 소시지처럼 보이고, 얼굴은 때론 박쥐처럼, 때론 코알라처럼 보이는 게 정말 웃긴다. 또 코는 얼마나 심하게 고는지…….
그 잔인하고도 혹독한 시기에 해피가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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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정말이지 천벌을 받을 일이다. 인간들도 때론 동물에게 배울 점이 많다. 아파도 징징대지 않는 인내, 주인을 따르는 순종,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위안, 집안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눈치 등등. 따뜻한 체온이 있고, 털이 있고, 눈을 보면서 교감할 수 있는 동물, 특히 나에게 있어서 강아지는 지치고 힘든 삶에 커다란 위안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