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엄마 처방전

1-7 그 옛날 공부하는 모습은 어디로

by 김미영

왜 머리가 산발이 된 채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의 뒷모습이 생각났을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거실에서 아이의 방을 보고 있노라면 책상 앞에 앉은 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무언가를 열심히 만지작거리다가 갑자기 책상에다가 세게 내리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액체 괴물이었다. 말랑말랑한 게 만질 때의 느낌이 너무 좋고, 손에 잘 달라붙지도 않는다. 아무튼 아이는 하교 후 집에 돌아오면 늘 책상에 앉아 액체 괴물을 만지면서 시간을 보냈다. ‘철퍼덕철퍼덕’ 다량의 액체 괴물을 책상에 내리치는 소리였다.

적어도 중학생이라면 책상 위에 책과 노트 그리고 필기도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한동안 아이의 책상 위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액체 괴물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도대체 왜 저럴까?’ 그저 한숨만 푹푹 나왔지만 또 잔소리를 하면 버럭 화부터 낼까 봐 참고 또 참았다. 사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액체 괴물이 인기 폭발이었다. 그것으로 무언가를 만들면서 창의성도 키우고, 또 촉감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감도 찾을 수 있는 유익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공부해야 할 중학생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 액체 괴물만 만지고 있으니까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로서는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몸담고 있는 **중학교는 1학년 1학기 때 내신을 본다. 그렇다면 내신 점수는 생활기록부에 고스란히 올라가기 때문에 신경을 좀 써야 하는데 아이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목동이라는 교육 특구로 옮겨 온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는데 말이다.


아이는 목동으로 이사 오기 전, 초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아주 잘했다. 특히 6학년 때는 전체에서 1등을 할 정도로 빛을 발했다. 학교에서나 학원에서나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마다 남다르다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기 때문에 엄마인 나도 항상 어깨가 으쓱 올라가 있었고, 교육에 대한 열정이 많은 엄마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해 주니까 늘 쳇바퀴 도는 고리타분한 삶일지라도 아이를 향한 희망이라는 게 생기고, 더불어 삶의 의미도 생겨났다.


“아이들 공부는 집에서 어떻게 시켜요?”

“그냥 매일 문제집 한 장씩 풀리고, 영어 학원에서 내 준 숙제가 전부예요.”

“학원은 많이 안 보내시나 봐요?”

“영어 학원, 논술 학원이 전부죠.”

“수학 선행은 전혀 안 시키세요?”

“빨리 지칠까 봐 무리한 선행은 안 시켜요.”

“아무튼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뿌듯하시겠어요.”

“아이고! 별말씀을요.”


길거리에서 아는 엄마들을 만나면 주로 이런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그럼 나는 솔직하게 아이의 공부법을 얘기해 주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항상 가볍고 행복했다. 그렇게 아이의 마지막 초등학교 시절을 보낼 즈음, 아이의 중학교 진학 문제에 대해서 남편과 진지한 얘기를 나눴다. 아이의 그릇이 작으면 어쩔 수 없다지만 공부도 잘하고, 하고자 하는 욕심도 있는데 굳이 더 큰 세상으로 나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곳이 목동이었다. 사실 강남은 경제적인 부담도 있었고, 교육열이 너무 힘든 곳은 나 또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중학교 1학년 중반으로 향하던 시기에 책상 앞에 앉아 하루 종일 액체 괴물을 만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떤 부모가 미치지 않겠는가! 그동안 무더기로 보관해 놓았던 액체 괴물을 쓰레기통에 싹 갖다 버리고, 아이와도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솔직히 엄마인 나보다도 아이 아빠가 더 흥분한 나머지 조금의 흔적도 남김없이 모조리 다 없애버렸다. 물론 이후 아이와 아빠와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순간순간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학생의 신분으로서 공부는 안 하고 오직 액체 괴물만 만지고 노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둘 것인지, 아니면 혼을 내서라도 못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갈등이 나를 굉장히 힘들게 만들었다. 사실 설득하는 말투로 “너 지금 한창 공부할 시기인데, 그런 거는 되도록 자제하면 안 되겠니?”라고 하면 왠지 먹혀들어갈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아예 무관심이나 언쟁, 더 나아가서는 폭력밖에 답이 없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피가 차가운 파충류인 사춘기였으니까.


“액체 괴물이 아이들한테 정서적으로 굉장히 안정감을 줘요.”

“그래도 지금 중학생인데…….”

“어른인 저도 심심할 때 만지는데요.”

“와우! 정말요?”

“저도 가끔 딸아이가 만지고 놀던 액체 괴물을 만지는데, 매우 느낌이 좋고, 기분도 좋아지더라고요. 그냥 만지고 싶을 때 실컷 만지게 해 주세요. 그러다 보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서서히 풀리지 않겠어요?”

“그것도 맞는 말 같네요. 참고해 볼게요.”


그야말로 편안하게 아이들을 잘 키우는 엄마가 나에게 해준 말이다. 그 엄마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데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수학에 있어서 도형에 관심을 보이면 수학 문제집을 들이대는 게 아니라 블록을 가지고 놀게 하면서 도형에 대한 감각을 키우게끔 만들어 준다. 참으로 지혜로운 엄마다.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엄마와 학원이 다른 점이 있다. 학원은 ‘점수’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이끌어낸다면 엄마는 그 결과에 앞서 공부에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편안한 환경과 정서적 안정 그리고 아이를 향한 믿음, 아낌없는 사랑과 칭찬 등 과정을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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