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엄마 처방전

1-6 가족끼리 외식한 지가 언제지?

by 김미영

네 식구가 오붓하게 고깃집에 둘러앉아 삼겹살 구워 먹은 지가 언제였을까? 아이 아빠는 불 위에 지글지글 삼겹살을 굽고 있고, 나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도록 수시로 뒤집어가며 손놀림이 분주하다. 그러면 아이들은 주린 배를 움켜잡은 채 빨리 달라고 보채면서 행복한 기다림을 즐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단란했던 분위기는 큰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고깃집에 남편과 나 그리고 둘째 아이만 가다가 지금은 남편과 나 둘만 간다.

사실 나도 사춘기 때, 아빠가 모처럼 삼겹살 먹으러 가자고 해서 가긴 했는데 그때 언니, 나 그리고 남동생 셋 다 우울한 사춘기 시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는 모처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고깃집에 가자고 한 건데, 우리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고기만 꾸역꾸역 먹다가 집에 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 술에 취한 아빠의 분노가 극에 달해 밤새 공포에 떨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가정이든 사춘기를 겪고 있는 가정은 그야말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잘 지내니?”

“잘 지내긴 뭘 잘 지내.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어. 너는?”

“나도 요즘 너무 우울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아.”

“아이들 때문에?”

“응.”

“사실, 나도 그래. 사춘기가 이렇게 무서운 줄 어떻게 알았겠니. 일단 밖에 나오면 집에 들어가기가 싫더라.”

“이건 좀 말하기가 그런데……. 나 요즘 우울증 약까지 먹고 있어. 내 의지로는 버텨내기가 너무 힘들어.

“그 정도로 힘들어? 난 그래도 합창단에 들어가서 노래 부르니까 좀 나아지더라. 같은 처지에 있는 엄마들도 있어서 서로 위로가 되는 것도 있고……. 너도 아이들한테 너무 집착하지 말고, 즐거운 일을 한번 찾아봐.”


언젠가 친구로부터 전화가 와서 주고받은 얘기이다. 그 당시 나도 힘들었지만 그 친구는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나보다 결혼을 빨리 해서 아이가 고등학생이었는데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왔는지 종종 가출도 하고, 엄마한테 욕까지 하는 불효자로 돌변한 것이다. 오히려 중학생 때는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에다가 착하기까지 해서 아들 잘 뒀다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친구였다. 그러니 당시 얼마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사실 우리 집도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마찬가지였다. 가족끼리 나가서 외식하기는커녕 함께 집밥 먹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서로 얼굴 마주 보는 게 어색할 정도로 집안 분위기는 삭막하고 어두웠다. 그래도 난 지금까지‘의미’란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왔기 때문에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억지로 식탁으로 나오게 한다거나 굳이 외식을 하자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냥 아이가 원하는 대로 자기 방에서 먹고 싶다고 하면 따로 상을 차려주곤 했다. 다만 밥이 먹기 싫다고 하면 굶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아이가 원하는, 입에 척척 달라붙는 배달 음식을 주문해 주느라 경제적 부담이 컸다.


배달 음식이라도 좀 영양가가 있는 음식이면 안심이라도 될 텐데 기껏해야 짜장면, 짬뽕, 치킨, 피자, 떡볶이가 전부였다. 이 음식을 돌아가면서 자주 시켜 먹었다. 정말이지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튼 속이 썩어 문드러지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 것 같았다. 그래서 부모들은 부지런히 마음을 비워 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로 인해 또다시 채워지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사춘기 아이를 대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우선 나의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욕심이 생겼다 하면 무조건 성취하기 위해 나 자신을 달달 볶는 경향이 있었는데 내 뜻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지 않음으로써 느긋한 마음이 생겼다. 두 번째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아이가 자신한테 집착하는 것을 너무 부담스러워했고, 이로 인해 나도 아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으로써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세 번째는 아이 나름대로 서서히 독립심이 키워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아이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림으로써 아이도 엄마에 대한 의존 경향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포유류 가운데 사자라는 동물은 새끼를 낳아 키우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절벽 낭떠러지에 자신의 새끼를 밀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떨어져서 살아남으면 좋은 거고, 행여나 죽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사실 우리나라 엄마들 대부분은 자식들을 끔찍이도 생각한다. 좋은 음식에 좋은 옷, 좋은 물건, 좋은 환경 등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챙겨 주면서 아이를 향한 집착이 가히 하늘을 찌른다. 그러다 보니 캥거루족이 많이 늘어난다. 캐나다에서 살고 온 지인과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캐나다에 살면서 이런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어.”

“무슨 광경이었는데?”

“내가 살고 있던 인근에 어느 한 가정이 있었는데, 그 집 아이가 20살이 되던 해에 그 엄마는 큰 맘먹고 아이의 독립을 위해서 밖으로 내쫓았던 것 같아. 그런데 며칠 후에 아이가 적응을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그 엄마는 아주 무서운 얼굴을 하면서 다시 밖으로 내쫓았어. 물론 그 가정의 숨겨진 스토리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섭더라.”

“와우! 그 엄마 정말 대단하다. 아이가 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끊고 맺는 게 정확하네. 사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니? 다만 그 사랑의 표현이 다를 뿐이지. 아무튼 정말 용기 있는 멋진 엄마네. 당시 그 아이는 엄마가 무척 원망스러웠겠지만 말이야.”



“엄마 캥거루 배주머니 속의 새끼 캥거루! 늘 항상 주머니 속에 새끼를 넣고 다니는 엄마 캥거루의 고단함은 점점 늙어갈수록 힘에 부친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서로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 배주머니 속에서 새끼를 빼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온전한 독립을 할 수 있도록 다소 냉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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