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이병기 작사, 조성은 작곡의 ‘별’이라는 이 노래는 정말이지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로 감성적이고도 아름다운 곡이다. 이 노래를 소프라노, 메조, 알토로 나누어 화음을 맞추고 있노라면 순간 울컥하는 감동이 밀려온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열창을 하고 나면 내 안의 나쁜 기운이 싹 빠져나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음악의 힘은 대단했다. 그 힘으로 당시 힘든 시기를 잘 견뎌냈고, 나 스스로를 어느 정도 변화시키는 기적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나는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닌데, 그러니까 아이의 공부에만 관심 있었던 그런 엄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도 모른 채 아이의 방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도대체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이가 가끔 화장실을 간다거나 냉장고에서 뭔가를 찾을 때만 열리고 문은 곧바로 닫혔다. 아이의 방 안에는 책상과 침대, 옷장 그리고 휴대전화가 전부다. 휴대전화는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너무나 원해서 사 줬던 게 이제는 아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가끔 휴대전화로 아이돌 그룹인 엑소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당시 엑소의 인기는 하늘을 뚫을 정도로 절정이었는데, 외모도 출중한 데다가 노래도 잘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아이돌이었다. 엑소는 초등학생부터 30대 여성까지 좋아하는 팬층이 워낙 광범위하여 그 인기는 날이 갈수록 더 폭발적으로 확대되어 갔고, 그 흐름에 내 아이도 편승을 하고 있었다.
♪∼뒤집고 무너뜨리고 삼켜 그래 널 훔쳐 탐닉해 널 망쳐 놓을 거야 네 맘속에 각인된 채 죽어도 영원히 살래 Come here girl You call me monster 네 맘으로 들어갈게∼♬
엑소가 최고의 인기를 누린 ‘몬스터’라는 노래다. 딱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가사와 웅장하면서도 파격적인 리듬에 어른인 나도 혹 하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가사가 집착에 대한 파멸을 부추길 수 있어서 다소 우려되었다. 그래도 시대가 시대인 만큼 부모도 열린 마음으로 청소년 아이들과의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거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엑소 콘서트에 서서히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콘서트가 개최되는 때와 장소를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고, 콘서트 표를 구하기 위해 PC방에 가서 티켓팅을 시도하였다. 물론 나는 아이와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좁히기 위해서 아이가 원하면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표를 구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힘들었다. 만약 티켓팅에 성공하지 못하면 방법은 한 가지 있었다. 이미 표를 구한 사람이 다시 되파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때 기존 표값의 몇 배에 달하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 입장에서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부담이 너무 컸다. 한두 번 가고 말 것도 아닐 텐데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그야말로 갈수록 태산이었다. 당시 남편과 나는 우리가 자라온 시대를 거론하면서 지금 아이들이 부족한 것 없이 너무 호강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자주 얘기하곤 했었다. 아니, 지금 시대는 풍요 속의 빈곤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채워져도 마음은 늘 텅 비어 있다는 것일 게다.
드디어 올 게 왔다. 티켓팅에 실패한 아이는 온갖 짜증에 안절부절못하는 행동까지 보였다. 그땐 이미 아이가 엑소에 푹 빠져 있는 상태였으리라. 난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섰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아이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사실 거액을 지급해서라도 엑소 콘서트를 보여 주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아이와 쓸데없는 입씨름을 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티켓팅 잘 안 됐니?”
“…….”
“대답을 해야 알지. 도대체 어떻게 됐는데?”
“말하고 싶지 않아요.”
“후유! 정말 답답하다. 그냥 이번에 엄마가 돈 줄 테니까 티켓 다시 되파는 사람한테 구해봐.”
“알았어요.”
“이왕이면 좀 싸게 파는 사람한테 알아보렴.”
“…….”
결국 엑소 콘서트 개최 며칠 전, 표 한 장을 무려 450,000원에 구입했다. 정말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아이돌 문화가 자칫 부모와 아이들 사이를 더 갈라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순간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기존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에서는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아이돌 스타들을 발굴할 것이며, 이에 따른 콘서트 관련 상술도 계속해서 음지쪽으로 퍼져 나갈 거라는 암담한 미래만이 그려질 뿐이었다.
이후 콘서트를 보고 온 아이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며칠을 그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오로지 대화는 엑소뿐이었다. 모든 대화의 내용이 엑소 멤버들과 노래, 그리고 관련 기사들이었다. 사실 들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보니 가끔씩 “이제 그만 좀 해. 너는 걔네들 말밖에 할 말이 없냐?”라는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넌 공부는 안 하니?” 하고 잔소리를 툭 내뱉으면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그만 얘기해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라는 쌩한 대답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다시 엑소가 출연하는 콘서트가 화성에서 개최되던 날, 표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아이 아빠와 나도 덩달아 콘서트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수많은 청소년들과 부모들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그날 나도 흥분된 기분으로 엑소 노래에 점점 빠져 들어갔고, 품위고 뭐고 다 내던진 채 온몸을 흔들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다 풀었다. 정말이지 아이들이 왜 엑소에 그토록 열광하는지 알 만했다.
그 이후로도 식을 줄 모르는 엑소에 대한 열정이 아이의 마음을 끊임없이 불사르고 있었다. 적어도 3년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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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사춘기에는 자신에게 꽂힌 관심사, 특히 연예인, 화장품, 메이커 옷, 게임 컴퓨터 외, 휴대전화 등에 집착하면서 엄마에게 끊임없이 얘기하곤 한다. 솔직히 어느 순간 귀를 아예 닫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피곤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엄마는 인내를 갖고 가능한 한 아이가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게 그나마 사춘기를 무난히 넘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설득이 통하지 않는 경우엔 아이가 원하는 걸 들어주는 것도 관계 악화를 피해 가는 길이다. 그렇지만 결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