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엄마 처방전

1-4 대화가 사라지는 조용한 집

by 김미영

조용했다. 가끔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안이 너무 조용했다. 기본적인 일상생활 속에서의 소음, 즉 수돗물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전기밥솥 소리, 전화벨 소리 등은 어쩔 수 없다지만 목소리만큼은 최대한 자제를 했다. 왠지 목소리를 내면 또 집안이 들썩들썩할 것만 같았다. 아무리 기분 상하지 않게 말을 해도 사춘기 때는 그 말을 다시 꼬아서 듣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도 자기 의지로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호르몬의 변화에 말이나 행동이 난폭해졌던 것 같다.


퇴근 후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온 남편이 무척 안쓰러웠다. 편안해야 할 집안이 때론 괴성이 오가는 공포의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고, 때론 너무나 조용해서 삭막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는 등 이미 집안은 편안히 쉴 곳이 되어주질 못했다. 그렇다고 내 코가 석 자인데, 남편한테까지 신경 쓸 마음의 여유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남편한테 참았던 스트레스를 푼다거나 하소연하기 일쑤였다.


“오늘 또 무슨 일 있었어?”

“휴우!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야. 도대체 나만 이렇게 힘든 건지. 다른 아이들은 부모한테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지 않을 텐데…….”

“글쎄, 모르지. 사실 사춘기 때 가출하는 아이들도 많잖아. 그래도 우리 아이는 가출은 안 하니까 다행이지 뭐.”

“쟤는 도대체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올까?”

“분명히 언젠가는 돌아올 거야, 엄마가 저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어떤 엄마가 그 정도까지 하겠어.”

“나도 모르겠어. 만약 아이가 계속 저런 식으로 간다면 우리 집은 그야말로 절망적일 것 같아.”

“둘째라도 잘 키워야지 뭐.”

“난 그전에 짐 싸가지고 집 나가버릴 거야.”


퇴근 후 집에 들어온 남편하고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남편 역시 상식을 뛰어넘는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점점 지쳐 가고 있었고, 아이 또한 아빠에 대한 거부감이 엄마인 나보다 더 심했다. 아빠가 아이의 방이라도 들어갈라치면 그 즉시 “나가.”라는 말이 제일 먼저 튀어나왔다. 뭔가 대화를 통해서 꼬인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하는데, 대화마저 거부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가끔 아이가 나에게 하는 말은 엄마, 아빠 하고는 대화가 전혀 안 통한다는 말뿐이었다. 그냥 부모와 대화하는 게 아이한테는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대화를 하는 순간, 부모의 잔소리를 또 들어야 하고, 눈치를 봐야 하고, 하기 싫은 공부도 하는 척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자신이 누리고 싶었던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게다. 그래도 자신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그 무모한 자유를 조금은 포기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 엄마로서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스스로 깨닫고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물론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초조하고, 불안했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면서 아이를 기다려 줄 것인가! 계속해서 쌓일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비워 내 줄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목동의 **초등학교 어머니 합창단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모 방송국 어린이 노래자랑에서 예심 통과한 것 빼고는 노래방에서 마이크 잡고 가요 부른 것이 전부였던 난 전혀 새로운 합창의 세계로 서서히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합창단 단원으로 처음 입단했을 당시, 나를 대하는 단원 엄마들의 반응이 너무 따뜻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들도 너무 밝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바로 이거였다. 내가 앞으로 마음을 비워낼 수 있는, 그래서 아이의 사춘기를 무난하게 넘길 수 있는 나의 관심사를 찾은 것이다. 너무 감사했다. 지쳐 쓰러지기 전에 다시 내 삶을 일으켜 줄 그 무언가를 찾았다는 사실이. 만약 내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서 아무런 의욕이 없었더라면 그 무언가를 찾을 힘도, 다시 행복한 가정을 꿈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초등학교 영상학습실로 노래를 부르러 갔다. 지휘자, 반주자를 중심으로 소프라노 단원, 메조 단원, 알토 단원들로 구성된 ‘소리모아’라는 합창단. 그날만큼은 적어도 나를 위해 모든 걸 투자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멜로디에 흠뻑 빠져보기도 하고, 단원들과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그렇게 하루의 반나절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엄마로 돌아와 아이들 뒤치다꺼리로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참 신기했다. 합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은 기분이 한결 나아져서인지 짜증도 덜했고, 아이에 대한 미운 감정도 다소 수그러드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나한테 짜증을 내거나 꼬투리를 잡아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리는 게 아닌가! 예전 같았으면 아이와 끝까지 말싸움을 하면서 결국 관계는 더 틀어지고, 집안 분위기는 그야말로 더 깊은 냉전 상태로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합창단원들의 열린 마음도 나를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데 한몫을 해주었다. 엄마들 사이에서조차 아이들 공부 서열로 편 가르기를 하고, 온갖 질투를 하면서 오로지 내 아이만은 좋은 대학 보내 성공시켜야 한다는 마음뿐인데, 이곳 합창단원들은 달랐다. 아름다운 멜로디에 의미 있는 가사를 입혀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 때문인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는 내면의 것을 볼 줄 아는 순수함이 있었다. 따라서 표정들도 가식이 아닌 편안함이 서려 있었다. 그중 어떤 엄마는 “아이가 훗날 무엇을 하든 즐겁고 행복한 것을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엄마의 표정은 항상 밝고 행복했다. 그리고 그 좋은 에너지는 주변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아이가 사춘기로 접어드는 순간, 엄마도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운동을 한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뜨개질을 한다든지 독서 모임에 참여한다든지 동네 엄마들과 만나서 수다를 떠는 등 내 아이에게 집중된 집착을 분산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한테 더욱더 집착하게 되고,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그런 엄마가 부담스러워 피하게 되면서 관계는 더욱더 틀어지게 마련이다.”

작가의 이전글사춘기 엄마 처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