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엄마 처방전
1-3 매일매일 치켜 올라가는 아이의 눈꼬리
꼬여도 아주 단단히 꼬였다. 이제는 감정의 실타래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서 다시는 풀릴 것 같지 않은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예 가위로 싹둑 잘라내 버리고 싶었다. 나는 아이에게 대화는커녕 말 한마디 꺼내기가 무서웠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갖 시비를 갖다 붙이면서 대드는 게 나의 신경을 아주 곤두서게 만들었고, 이러한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져 나갔다. 그리고 어떤 때는 걱정이 돼서 아이에게 뭔가를 얘기하려고 하면 대답이 아예 없거나 상관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너 외고 가려면 독서기록장도 꾸준히 기록해 둬야 하고, 동아리 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거야.”
“…….”
“왜 대답을 안 해?”
“…….
“너 엄마 말이 말 같지 않아?”
“내가 알아서 해요.”
“알아서 안 하니까 문제지.”
“왜 엄마가 내 일을 상관해요?”
“당연히 엄마니까 상관하지.”
“으악! 정말 짜증 나.”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엄마는 그냥 편하고 만만한 존재니까 말이나 행동을 거르지 않고 무조건 내뱉어 버리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엄마들도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너무 편해서, 너무 만만해서 받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물론 반대로 엄마가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간의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한 거고, 그 과정에서 조율이 필요한 것이리라. 하지만 예외가 있었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하고는 마치 벽과 얘기하는 것처럼 아무런 교감도, 소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다가 소름 돋는 사건 하나를 들었다. 어느 아파트 단지에 한 가족이 이사를 왔는데, 중학생 딸 둘을 키우는 가정이었다. 맞은편 단지 베란다를 통해 보이는 그 가정의 모습은 아빠는 퇴근 후 항상 바이클 페달을 구르며 운동을, 딸 둘은 거실에서 항상 아이돌 춤 연습을, 그리고 엄마는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일반 가정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파트 내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이어 들려온 소식은 어느 중년 아줌마가 창문으로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새로 이사 온 가정, 바로 딸 둘을 키우던 그 엄마였다. 그렇게 3일장이 치러지던 기간에 그 집의 불은 계속 꺼져 있었고, 그 이후 아빠는 여전히 운동을, 딸 둘은 아이돌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아이들 엄마의 모습만 볼 수가 없었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그냥 눈물이 났다. 그 엄마는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이유는 모른다. 그냥 같은 엄마 입장에서 다양한 추측만 할 뿐이다. 아마도 그 엄마는 하루하루가 죽을 만큼 힘들었을 게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엄마로서 살아보니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가 더욱더 어깨를 짓눌렀다.
특히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을 옆에서 늘 지켜보는 엄마 입장은 그야말로 도 닦은 스님보다 더 한 수 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부모의 자리를 아예 잃어버리거나 가정도 흔들릴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병이 걸린다거나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아마도 아직 아이가 사춘기를 겪고 있지 않다거나 순하다거나, 엄마와의 관계가 돈독할 경우에는 절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엄마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여하튼 나도 혹독하게 아이의 사춘기를 겪었던 엄마로서 그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나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지금껏 나를 지켜 준 힘은 아이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나만의 관심사, 나를 사랑하는 자존감 그리고 집 밖에서의 내 존재감이었던 것 같다. 보통 아이들은 자라는 과정에서 어느 시점이 되면 정신적인 독립을 서서히 준비한다. 그때가 바로 사춘기이다. 그래서 엄마는 그 시기를 빨리 받아들이고, 아이로부터 어느 정도 선을 긋는 게 필요하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그 당시에는 나도 몰랐다. 하룻밤 자고 나면 아이의 눈꼬리가 조금씩 더 올라가 있었고, 엄마인 나를 깔보듯 내려다보는 것이 정말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부모로서 혼을 낸다거나 가르치려 드는 것은 전혀 먹혀들어가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분란만 더 가중시키는 무모한 일임을 서서히 깨닫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난 아무리 자존심이 상하고, 죽고 싶더라도 그냥 마음속으로 인내하며 참고 비워냈다.
정말이지 끝을 알 수 없는, 계속되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아이에게 무시당하면서도 늘 부닥칠 수밖에 없는 잠 깨우기, 학원 보내기, 숙제 확인하기, 학원 선생님과 조율하기, 짜증 받아주기, 반찬 투정받아주기, 원하는 것 들어주기 등등 진정으로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동이 아닌 최소한의 분란을 막기 위한 처절한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렇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난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변화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정을 지키기 위한 어느 한 여자의 몸부림이 ‘엄마’라는 커다란 존재로 재탄생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변화되는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는 침묵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말하는 ‘엄마의 잔소리’라는 말이 아이들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만 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엄마의 말은 무조건 잔소리로 듣게 되고, 이로 인해 귀를 아예 닫아버리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그야말로 치가 떨리는 무시를 또 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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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존재는 마치 흔들림이 없는 커다란 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강한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번개가 내리치고, 누군가 발로 차고, 돌로 찍어도 끄떡없을 정도의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보통 사춘기 아이들은 시시때때로 엄마를 놀리곤 한다. 어떤 때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엄마를 깔아뭉갠다. 그때 엄마는 꿋꿋하게 버티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은 강한 엄마 밑에서 그나마 안정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