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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n 06. 2021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뚱뚱이 아저씨를 번쩍 들어 올린 홀쭉이 아줌마

 거리두기 1단계, 1.5단계, 2단계, 마스크, 방역, 확진 자, 줌 수업, 해외여행 기피, 모임 자제, 재택근무, 손 소독, 열 체크……. 작년 초부터 시작된, 사상 유래 없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리고 지금도 듣고 있는, 앞으로도 언제까지 들어야 할지 모르는 코로나 관련 단어들이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는 단순히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숨 막히는 상황들, 특히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집콕 생활에 있어서 ‘엄마’라는 자리는 그야말로 악착같이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막중한 책임의 자리였다. 코로나로 인해 철저하게 폐쇄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실 삼시 세 끼 밥 차리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그 옛날, 우리네 어머님들이 “뒤돌아서면 또 밥 차려야 할 시간이다.”라고 했던 말과 “나이 들면 커다란 들통에 곰국 끓여놓고 여행이나 다녀야겠다.”라고 했던 말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제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지도 벌써 1년이 어간다. 그동안 누구나 다 힘들었겠지만, 가정 내에서 가족들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감당해야만 했던 엄마들의 고충은 그야말로 엄청났으리라 감히 짐작해 본다. 나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남편을 제외한 입맛 까다로운 아이들 때문에 밥 하는 게 거의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영양가 있는 반찬을 해놓아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맛없는 반찬이 되기 일쑤였고, 먹던 반찬이 또 나오기라도 하면 차라리 라면을 끓여달라는 식이었다. 사실 라면도 한두 번이지 너무 자주 먹이다 보니 나중엔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먹고살려고 그런 거야.”라는. 그만큼 먹고사는 게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코 쉬운 일만도 아님을 뜻하는 것일 게다. 이는 곧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지도 못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아이들, 글쎄 모르겠다. 우리 집 아이들만 그런 건지도. 코로나 이후, 거의 대부분 책상 앞에 앉아서 생활하다 보니 입맛에 매우 민감해졌다고 할까? 특별하거나 맛있지 않으면 그 즉시 인상부터 찌푸리곤 하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는 안 먹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이다. 그러면 엄마 입장에서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왜냐하면 그냥 안 먹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먹고 싶은 게 머릿속에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다음 단계는 당연히 신경전이다. 아예 안 먹고 토라지든지, 한바탕 잔소리하고 사주든지, 그것도 아니면 가장 만만한 라면을 끓여주든지 말이다. 그나마 우리 집은 남편이 열심히 일한 덕에 그런 입맛 까다로운 아이들을 먹고살게끔 해준 부분도 있다. 입에 척척 달라붙는 배달음식이라도 자주 사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여하튼 뉘 집 자식인지 주는 대로 맛있게 먹는 아이들만 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요즘 시대에 그런 아이들이 있긴 한 걸까? 코로나 시대, 매일같이 먹어야 하는 밥과의 전쟁! 그리고 그 밥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들……. 이토록 힘든 시기에 엄마들의 지혜는 필수인 듯하다. 내가 생각하는 지혜란 어떤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이를 잘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본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정말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최선의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슬기롭게 대처한다. 다만, 지혜는 다양한 경험과 연륜, 그리고 타고난 성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다양한 경험과 연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나이도 젊고, 경험이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지혜로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매우 긍정적이고, 하고자 하는 일도 잘 풀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는 곧 타고난 성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성향은 어떠한 계기나 노력에 의해서 바뀔 수도 있다.       


 사실 나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우울증이 찾아왔다. 이전에는 간간히 우울증이 찾아올 때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면서 금세 떨쳐버리곤 했는데, 이번은 달랐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외출 자제, 등교 자제, 여행 자제 등은 가족들을 집 밖으로 못 나가게끔 묶어두었고, 이로 인해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다 내 몫이 되고 말았다. 삼시 세 끼 밥 차리기, 간식 챙겨주기, 남편 술상 챙겨주기, 아이들 짜증 받아주기, 사춘기 아들 녀석 눈치 보기 등등 내가 스트레스를 해소할만한 방법이나 시간은 전혀 주어지질 않았다. 예전, 잠시나마 텅 빈 집에서의 고요함을 누리며 마음을 다스리던 시절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말이지 하루하루 숨이 막혔다. 철저하게 폐쇄된 집안에는 방대한 공부 량에 허우적대는 고등학생 딸아이와 중2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아들 녀석,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남편이 있었고, 난 그런 가족들을 위해서 억척스럽게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사실 결혼 전에는 ‘엄마’라는 역할을 참 우습게 본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집안일을 하는 정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나 자신이 너무도 경솔했다는 생각이 든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과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불평, 불만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엄마인데 말이다. 솔직히 그런 위치에 놓인 나 자신을 어느 순간 그냥 놓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상황에서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으니까.


 그래도 난 엄마니까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넘겨야만 했다. 엄마인 내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가정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따라서 마음을 다스려 줄 만한 음악과 책 그리고 산책을 통해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그 힘으로 가족들의 힘든 부분을 함께 나누곤 했다. 물론 공부로 지친 첫째 아이와 사춘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둘째 아이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벅차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피하는 순간, 그 대가는 고스란히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말처럼 이 시기를 나름 기회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잠시 나를 버리고,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무조건 맞춰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가히 성공적이었다. 첫째 아이의 경우엔 예민했던 성격이 다소 무던해졌고, 둘째 아이의 경우엔 어둠의 그림자가 서서히 걷히면서 다소 밝아진 모습이 역력했다. 참 이상한 게, 나를 낮추니까 아이들의 성격은 오히려 밝아지는 듯 보였다. 이는 곧 부모의 권위가 자식들에게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나에게 있어서 코로나 사태는 아이들과 좋은 관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계기 마련이 된 셈이다. 이처럼 가정 내에서의 엄마이자 아내의 역할은 참 중요하다. 순간순간 지혜를 발휘하면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 그런 엄마들의 모습에서 더없이 강한 아름다움을 느끼곤 한다.


 예전, 참 오래된 일이긴 한데…….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남편이 한창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상하구조로 된 직장 내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온 남편은 가끔씩 술만 마셨다 하면 필름이 끊기곤 했다. 그때마다 난 아주 곤욕을 치르곤 했는데……. 한 번은 회식을 마친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마도 그때 시각이 새벽 시쯤 되었을까? 혀가 완전히 꼬부라진 채 집 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난 서둘러 달려 나갔고, 집 앞엔 택시가 한 대 서 있었다. 택시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남편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난 얼른 택시비를 지불하고, 남편에게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얼마나 많이 취했는지 대꾸는커녕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난 급한 마음에 남편의 팔과 다리를 잡아당기면서 문밖으로 잡아끌려고 했지만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잦은 회식으로 인해 술살과 안주 살이 쪄서인지 몸이 워낙 비대하긴 했다. 그렇게 시간은 점점 흐르고……. 기사 아저씨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난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고, 그때 옆을 자나가던  비쩍 마른 아주머니가 차안을 슬쩍 들여다보더니 "쯧쯧" 혀를 차며 한마디 내던졌다. "아이고! 우리 남편도 이런 일이 수없이 많았는데..... 저리 가보세요. 내가 한번 끄집어 내볼 테니."라고. 그리고는 곧 남편의 바지춤을 움켜쥐더니 밖으로 “휙” 하고 끄집어내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택시 뒷자석에서 꿈쩍도 안 하던 남편이 그 비쩍 마른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드디어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상대방의 허리춤을 힘껏 잡아 순간 힘을 쓸 수 없게 된다고 한다.


 그날 그 어두컴컴한 새벽녘, 집안에서는 언제 깰지 모르는 갓 난 아기가 자고 있었고, 밖에서는 술에 취해 꿈쩍도 하지 않는 남편이 택시 안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때 나에게 엄습해온 불안감은 그 아주머니를 만나는 순간 이내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경험과 연륜, 그리고 개인적 성향에서 묻어나는 삶의 지혜, 그 지혜가 우리네 삶을 보다 편안하게 이끌어준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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