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엄마 처방전
1-1 “내 꿈을 왜 엄마가 좌지우지해?”
“내 꿈을 왜 엄마가 좌지우지해?”
한동안 딸아이와의 대화 단절 이후 처음으로 둘이 마주 앉았을 때 아이가 나에게 내던진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아이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나를 마치 엄마가 아닌 원수를 보는 듯이 했다. 그리고 그 무서운 눈빛으로 나에게 이런 말을 던졌을 때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순간 ‘도대체 이게 뭐지?’ 하면서 두려움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묵직한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심하게 가격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난 엄마니까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아이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 당시 아이를 향한 내 눈빛은 과연 어땠을지 지금 생각해 보면 몹시 궁금하기도 하다. 사실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가증스럽게도 전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네가 그쪽으로 원한다면 그 길로 가야지. 그런데 연예계의 길은 험난해. 설령 네가 연예인이 아닌 연예계 관련 일을 한다고 해도 화려함 뒤에 숨어 있는 그 이면의 외로움과 지저분함 그리고 차별 등을 다 감안해야 할 거야. 만약 네가 그토록 연예인이 좋다면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방송국 PD를 하면 어떻겠니?”
사실 딸아이는 초등학교 때까지 꿈이 외교관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꿈은 아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아니라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세뇌를 통해 주입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책을 많이 읽어서 또래 아이들보다 아는 것도 많았고, 영어는 물론 모든 과목에서 앞서 나갔기에 우리나라를 넘어 국제 외교 쪽으로 아이의 꿈을 끼워 맞춰 왔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하면서부터 얘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는 ‘엄마’라는 절대 권력자의 명령을 거스를 수가 없었을 게다. 아직 어리고 엄마의 경계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갑자기 키가 훌쩍 크면서 엄마의 키를 넘어서고, 자아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엄마’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자신을 간섭하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예전에 문화센터로 청소년 심리 관련 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청소년 상담 전문가가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사춘기 이전까지 부모가 일궈 놓은 가정 안에서 사랑받고, 배우고, 혼나고, 깨달으면서 어느 정도 부모가 원하는 자녀 상으로 자란다. 하지만 사춘기 이후부터는 그 틀을 완전히 깨부수고, 자신의 집을 다시 하나하나 지어가는 과정을 거친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이론은 내 아이에 대한 강한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그래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상황에서도 결코 믿고 싶지 않아서 몸부림을 치며 거부했던 사춘기 심리 관련 내용이었다. ‘어떻게 내 아이가 그럴 수 있지?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곧 돌아올 거야. 지금까지 엄마인 나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하루아침에 돌변을 해. 서서히 달라지겠지.’
우리 가족은 큰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말에 목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동안 돈암동에서 죽 살다가 비록 초등학교 때였지만 둘 다 공부를 잘했고, 이로 인해 나 또한 주변 엄마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기대치를 유지 내지 올리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더욱더 강요할 수밖에 없었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목동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 딸아이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목동에서 더욱더 강도 높은 학원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 꽤 길었던 겨울 방학을 이용해 하루에 5시간씩 가장 힘든 수학학원에서 특강을 들었고, 영어도 레벨이 제일 높은 특목반으로 들어가기 위해 테스트를 받았지만 아쉽게도 특목반 바로 밑 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논술도 목동에서 가장 유명하다 싶은 학원에서 시험을 치러 상위 3% 반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름대로 수학, 영어, 논술의 방향을 정한 뒤 1주일 단위로 쳇바퀴 돌듯 아이는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사실 더 많이 수업을 듣는 아이들에 비하면 그냥 기본 정도만 하고 있는데도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 입장에서는 그저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겨울방학에 틈만 나면 친구들과 만나서 실컷 놀다가 들어왔던 내 중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랬다.
어찌 됐건 두어 달이 넘는 기나긴 겨울방학이 지나가고, 목동 내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새로 전학을 온 데다가 친한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고, 학교 수업에, 학원 수업에,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사춘기까지 겹쳐서인지 아이는 너무나 힘들어했다. 그래도 별 내색 없이 하루하루 잘 견디어 나가는 모습이 대견스럽게 느껴졌고, 잘할 수 있으리라는 딸아이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위로보다는 ‘너는 잘할 수 있어!’라는 압박감을 더 준 것 같다.
게다가 학교생활에 있어서는 친구들 간의 세력 다툼으로 이어지는 관계 형성이 시작되고 있었고, 학원 생활에 있어서는 아이를 향한 선생님의 날카로운 지적이 시작되고 있었다. 또한 논술 학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토의 토론을 위한 그룹 수업이 있었는데, 이미 친한 아이들끼리 뭉쳐 있는 상황에서 내 아이가 투입되었다. 그래서인지 친한 아이들이 한 편이 되어 내 아이를 공격하는 찬반 토론 수업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초반, 아이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그 누구도 아이와 한 편이 되어 주질 못했고, 아이 또한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몰랐던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런즉, 가슴속에 자리 잡았던 작은 분노의 불씨가 서서히 피어오르면서 아이의 작은 가슴에 서서히 상처를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왜 그 당시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일까! 내 아이의 고통을 왜 나 몰라라 했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이 너무도 어리석게 느껴진다. 아이에게 ‘엄마’라는 한없이 커다란 존재를 상실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아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렇게 아이는 서서히 마음의 문을 닫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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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미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공부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가 그러한 공부에 대한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가정에서나마 따뜻한 말 한마디, 자유로움,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휴식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