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엄마 처방전
1-2 "쾅" 하며 굳게 닫힌 방문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나를 본 채 만 채 무시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뒤 방문을 아주 세게 "쾅" 하고 닫아버렸다. 얼마나 세게 닫았는지 문 앞에 걸려 있었던 철사 옷걸이가 문틈에 낀 채 닫혀버렸다. 그 순간,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다시 방문을 열었고, 침대 위에 너부러져 있는 아이를 향해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야, 너 그게 무슨 태도야?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기에 그딴 식으로 행동을 해. 너만 힘들어? 다 너처럼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면서 힘들어. 그렇다고 부모한테 이렇게 함부로 행동하지 않아. 이 못된 것 같으니라고!”
아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엄마인 나를 노려보며 당장 자신의 방에서 나가라고 윽박질렀고, 이에 나는 더욱더 화가 나서 심한 욕설까지 내뱉고 말았다. 그러자 아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는지 나를 밀치듯 문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던 나는 결국 문밖으로 내팽개쳐지고 말았다. 워낙 아이가 키도 크고 체격이 있다 보니 당연히 내가 밖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아이 방과 거실을 구분 짓는 문밖에서 멍하니 서 있었고, 이어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가슴이 저려 오는 통증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라고 해봐야 남편, 나, 큰아이, 작은 아이 네 식구인데, 그때 그 순간만큼은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 벌판에 오롯이 나 혼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틀어진 것일까?’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못되게 행동하는 아이를 다독이면서까지 대화를 나누고 싶진 않았다. 그냥 괘씸하고, 꼴도 보기 싫었다.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길을 안내해 주고, 지원을 해주고, 온갖 뒤치다꺼리에 내 소중한 인생을 다 소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감히 이럴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하루하루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아이들이 힘든 만큼 엄마인 나는 더 힘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들 뒷바라지에 독서토론 논술 교사까지 겸했다. 그렇게 아이들 눈에 게으른 엄마로 보이지 않도록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오직 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는 그냥 희생양으로만 살아왔다. 요즘 엄마들은 자신의 삶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항상 나 자신보다는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컸다. 아마도 다른 엄마들에 비해서 모성 본능이 유난히 강했나 보다.
사실 그런 나였기에 당시 처해졌던 위기 상황에서 뚜렷한 답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딸아이와 나의 감정의 벽은 더욱더 두터워져만 갔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늘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고, 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안방에서 영어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하루를 겨우 버텨냈다. 서로 부닥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주기적으로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면 나도 나 자신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심한 욕설도 퍼붓고, 물건도 내던지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곧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으니까. 아이 아빠도, 동생도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지만 엄마가 아닌 이상 제삼자였다. 지금껏 아이를 낳고 기른 엄마이기에 밥도 챙겨 줘야 하고, 옷도 챙겨 줘야 하고, 잠도 깨워 줘야 하고, 학교도 보내야 하고, 학원도 보내야 했다.
이렇듯 아이와 늘 부닥치는 상황 속에서 감정의 골은 점점 더 심해져 갔고, 그 와중에도 순간순간 어르고 달래면서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걸어왔던 것이다. 솔직히 그때 내 심정은 아이가 완전히 빗나가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모녀간 끈이 연결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이를 향한 내 마음과는 전혀 반대로 행동했다. 죽도록 미웠지만, 행여나 아이가 학원에 안 갈까 봐 말투는 그야말로 연기자를 방불케 했다.
“학원 갈 시간이야. 빨리 일어나야지.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자. 삶을 100년으로 따져 봤을 때 인생의 기로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6년 사이에 결정된단다. 그러니까 눈 딱 감고, 6년만 열심히 하자. 그러면 넌 나머지 80년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하교 후 집에 오자마자 낮잠 자는 아이 옆에서 이렇게 얘기해 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잠에 취한 나머지 어떠한 얘기도 들리지 않았고, 심지어 학원에 가려는 의지조차 없었다. 그나마 학교는 온갖 인상을 쓰면서 가긴 했다. 어찌 됐건 학원에 갈 때마다 집안이 거의 풍비박산 날 정도로 난리가 났다. 전혀 움직이지 않으려는 소를 억지로 잡아끄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에너지 소모가 됐다. 거의 기진맥진할 정도로 진땀이 났고, 방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 이렇듯 매일같이 학원에 가니 안 가니 하면서 서로 감정싸움하는 게 너무나도 피곤했고,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학원을 다 빼버릴 용기도 나에겐 없었다. 왜냐하면 쉬었다가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이후 다른 학원에 가게 될 경우, 아이와 맞는 학원도 다시 알아봐야 하고, 막상 학원에 들어가더라도 다시 레벨 테스트를 본 후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아이를 더 지치게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만약 아이가 학원을 가기 싫어하면 선생님들에게 수업료 이월 처리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였다. 물론 선생님들은 기분이 좋지 않을 게다. 아이가 사적인 이유로 학원을 빠지는 데다가 빠진 만큼의 수업료가 선생님 월급에서 차감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도 오기가 생겨서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 하며 끈질기게 버텨왔던 것 같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가 학원 가기 싫다고 하면 “그래! 그럼, 가지 마.” 하고 바로 학원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 이후 결과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여하튼 나의 집요하리만큼 끈질긴 인내는 3년이 지난 지금, 같은 선생님과 꾸준히 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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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존재는 때론 자신의 감정을 속인 채 연기자가 되기도 해야 하고, 때론 모든 걸 초월한 도 닦은 스님이 되기도 해야 하고, 때론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 되기도 해야 하는 등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변할 줄 알아야만 집안이 평안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상대방의 진정성과 가식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단순하게도 자신의 기분만 맞춰주면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