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핑계의 낮잠
드디어 카페에 나와 노트북을 키고 앉았다. 무슨 말로 시작해야하는지 잠깐 어색한 기분이 들어 괜히 손을 비비고 포개며 멍을 때린다. 일단 그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보고해보자면 양심적으로 책은 틈틈이 읽은 것 같다. 이 정도면 많이 읽었는데 라고 자신 있게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긴 하나 읽는 행위를 끊고 살고 있지 않았다는 건 아주 큰 위안이 된다.
그래도 나 자신과의 약속으로 세운 처음의 목표들을 생각해보면 참 게으르게 지내고 있었다. 열심히 쓰고 읽고 수집하는 그런 생산적인 주기가 있으면 반대로 열심히 늘어지고 안하고 정신도 육체도 불필요한 것들이 붓고 무거워지는 주기도 있다. 요 근래 그렇게 지냈다. 지금도 아직 그렇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현재. 휴무 날. 주말 오후. 희한하게 집중이 꽤 잘 되게 만들어주는 소음으로 찬 프랜차이즈 카페를 찾아서 이렇게 쓰고 있는 행위는 나에게 의미가 있다. 아니 의미가 크다(이렇게라도 안하면 아마도 혼자서 쓰디 쓴 좌절감의 기운을 둘러쓰고 괴로워했겠지).
곧 퇴사를 앞두고 있다. 그러고보니 오늘로 정확하게 딱 한 달 뒤이다. 계약 만료로 1년의 기간을 채우고 퇴사할 예정이다. 이후의 계획을 말해보자면 현재 상황에서는 일단 없다. 취업에는 목표가 없기 때문에 이 입장에서 보면 없는게 맞긴 하다. 이왕 생활비를 벌기 위한 월급을 받는 목적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은 쪽의 적당한 일을 천천히 구할 생각이다. 그러면 그 전까지 이제 이 황금 같은 시간들을 과연 어떻게 써야할까.
당연하게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이제야말로 집중해서 투자하고 싶다. 좋아서 하는 행복한 투자. 꼭 일을 안해야만 할 수 있고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다는 건 당연히 아닌 얘기지만 늘 출근하러 가는 길이면 아쉬운 푸념의 한숨을 쉬며 생각하곤 했다. ’아 이대로 출근 안하고 좀 더 읽고 싶다', '오늘은 하루종일 편집도 해보면 좋을 텐데', '오늘은 좀 집중해서 써서 올려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스스로 판단한 상황이 이러하니 퇴사 후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기대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지금의 컨디션보다는 더 집중해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지독한 내 안으로 파고들어 표현해보이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을 것 같다. 쓰다보니 더욱 기대가 된다.
아무튼 그렇다고 해서 그 전까지 아예 아무것도 안하고 이대로 퍼질러 사는 건 이제 좀 자중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요즘에 러닝을 시작했다. 시작했는데 뛰는 주기가 들쑥날쑥하다. 며칠 꽤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하다가도, 쉬어버릴 때는 또 며칠을 꾸준히 놓고 쉬어버린다. 아 그 놈의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다시 꺼내서 읽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이다. 방금 막 카페에서 읽으면서 아래 문장 덕분에 지금 이렇게 감사한 채찍을 맞고 노트북을 키고 쓰고 있다.
이것은 앞서 쓴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생략)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답은 있다.
더 주옥같은 문장들이 가득 있지만 아무튼, 달콤한 낮잠에 길게도 빠진 것 같던 나의 동기를 살살 깨워주고 있었다. '오늘은 일단 이러니까 안돼, 내일부터‘ 라는 핑계를 보기 좋게 만들어내며 미루고 미루던 이 몹쓸 패턴을 또 시도하려다가 끊고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뿌듯하다. 다 쓰고나면 이제 다음으로 또 해야할 일이 있다. 그리고 또 무엇을 할까. 아 나오기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