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그는 야구장에 갔다> (2017)
어느 날과 다름 없이 회사로 출근한 나. 마주치는 회사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려는데 누군가 회사에 들어온다. "여기 이 아무개씨 근무하는 곳 맞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쏠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던 나는 자리에서 어정쩡하게 일어난다. "저인데 혹시 무슨 일로...?"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와 내 손을 붙잡는 남자. 그리고 수갑이 채워진다. 내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란다. 용의자라는 말을 곱씹어본다. 현실감이 없다. 대체 나는 어떻게 될까.
그 날, '후안'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그는 야구장에 갔다>는 하루아침에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남자 '후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그는 하루 아침에 한 소녀를 죽였다는 용의자로 지목되어 경찰과 검찰 모두에게 압박 수사를 받게 된다. 살인사건의 목격자도 그가 범인과 닮았다고 지목하며, 몽타주도 그와 비슷하다. 모든 걸 포기하려던 '후안'은 문득 한 가지를 떠올린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 날, 자신이 '야구장'에 갔다는 사실을.
하지만 사건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입장권을 현금으로 구매하여 기록도 남아있지 않고, 아빠와 함께 야구장에 갔다는 딸의 증언도 나이가 너무 어린 탓에 실질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후안'의 변호사는 포기하지 않고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설득력 있는 증거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런 그가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낸다. 그날 후안이 찾은 야구장에서 방송사 HBO의 프로그램이 촬영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사실 변호사는 노력 끝에 이미 야구 중계 프로그램에 잡힌 후안의 얼굴을 찾아냈었지만 그닥 좋지 않은 화질로 인해 증거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상황. 변호사는 HBO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수많은 녹화본을 뒤진다. 엄청난 양의 녹화본, 심지어 야구장의 수많은 관중 속에서 후안의 얼굴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한 카메라에 잡힌 후안과 그의 딸의 모습을 찾아낸다. 그 당시에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그 순간. 카메라맨에게는 지나가는 야구장의 관중이었을 뿐이고 후안 또한 촬영 카메라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촬영본이 그를 억울한 살인 누명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평생 누군가 들여다보지도 않았을 수도 있는 비디오 덕에,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우리는 살면서 꽤 많이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가정해본다. "만약에 로또에 당첨된다면?" "만약에 신이 나에게 원하는 능력 한 가지를 준다면?" 같은 것들 말이다. 아마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후안' 또한 그런 생각 혹은 가정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고, 그 누명을 벗고 나서 그는 얼마나 많은 가정을 되뇌어 보았을까.
만약 내가 그날 야구장에 가지 않았다면, 갔어도 촬영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면, 만약 그 야구장에서 촬영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는 평생을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살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은 '만약에'들이 기적처럼 들어맞아서 찾아낸 그의 결백함. 사실 하늘도 진짜 그가 저지른 죄가 아니니 기적처럼 우연함이 만들어낸 기회를 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야구장에 갔다>는 40분의 짧은 러닝타임 안에 흡입력과 속도감을 갖추어 부담감 없이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내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가지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첫 관람작으로 <그는 야구장에 갔다>를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 분명 후회하지는 않을 선택이라 감히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