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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까?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덜 자란 어른

by 민진킴

나는 어른이 되었을까?


어른.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으로 되어있다. 어린 시절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의미는 후자에 가까웠다. 후자의 정의 외에도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1) 경제적 독립을 이루었으며 2) 무언가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3) 맡은 일을 수월하게 해내는 능력과 책임감이 있는 사람. 이 정도를 갖춘 사람만이 '어른'으로 불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어린날의 내가 생각했던, 그런 '어른'이 되지 못했다.


은행, 정부의 지원, 부모님의 경제력으로 간신히 원룸 하나를 얻은, 경제적 독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어째 날이 갈수록 무엇 하나 선택하는 게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으며, 맡은 일을 수월하게 해내기는커녕 늘 마감 앞에 발을 동동 굴러대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책임감은 놓치지 않았다는 것. 그건 조금 다행이다.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어릴 적 생각했던 것과는 제법 다른 의미로, 종종 어른이 되었음을 느낀다.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잘못 혀를 씹었을 때처럼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쌉싸름한 순간들이 있다.


싫어하는 일도 꾸역꾸역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렇게 꾸역꾸역 해낸 일에 성취감보다는 씁쓸함이 먼저 찾아올 때, 수긍하고 타협하는 태도가 디폴트가 될 때가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태도에 관한 변화뿐만 아니라 자아가 무뎌지고 있음을 깨달을 때, 쌉싸름함은 두 배가 된다. 좋은 것을 좋다고, 싫은 것을 싫다고 구태여 말하지 않고 속으로 삼키는 그 순간들. 뾰족했던 나의 가시가 점차 잘려나가고 있는 게 느껴질 때, 괜히 마음이 찌르르하다. 해야 할 말에 대해 고민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고르고 있는 날 보며, 이런 게 어른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까?


하루 24시간이 모여 한 달이 되고, 그 한 달이 12번 모이면 1년이 되고, 그런 시간들이 쉼 없이 모이면 자연스레 어른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내가 꿈꾸었던 '어른'은 지독히 노력해야 닿을 수 있는 이상향이었고, 그저 흘러온 시간 속에서 마주한 건 어른의 탈을 쓴 비겁한 겁쟁이였다.


날이 갈수록 앞서 말한 쌉싸름한 순간들이 많아지는 게 느껴진다. 이런 게 어른의 모습이라면 차라리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어른'이라면 쓴 것은 꿀꺽 삼킬 수 있어야 하지만, 나는 아직도 달콤한 것들만 입 안에 넣는다. 꼭 유치원생 어린이처럼 말이다.




어른들은 몰라요


청소년들이 내뱉을법한 발칙한 카피이지만, 나는 오히려 이제야 이 문장이 와 닿는다. 어른들은 몰라요. 네, 어른이 되었지만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알고 싶지 않은 것들만 알게 되고, 진짜 알아야 할 것들은 여전히 몰라요. 맞아요. 어른들은 몰라요.


어쩌면 어릴 적 꿈꿨던 '어른'의 모습은 인생의 최종 목표쯤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도 어릴 적 꿈꿨던 어른의 이상향에 닿지 못했고, 여전히 그곳에 닿으려 아등바등거리고 있다.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발칙한 카피 앞에서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 이제 좀 알겠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순간, 진짜 어른이 될 순간은 언제쯤 내게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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