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여느 때처럼 침대에 드러누워 유튜브 속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극적인 썸네일들을 눌러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콘크리트 바닥과 벽을 지나쳤기 때문에 내 귓가에 닿은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 근원지에서 듣기에는 꽤 큰 소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곧이어 맞받아치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어른 한 명과 아이 한 명이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옥신각신하다 잠잠해졌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소리를 지르나 귀 기울여 듣던 나는 결국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 채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의 상황 때문이었는지, 눈에 들어오는 영상이 있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육아 프로그램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상황을 녹화한 뒤 전문가와 함께 보면서 교육 및 훈육 방법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주 골자인 듯했다. 이 가족 저 가족의 이야기들을 주욱 보며 든 생각은, 어린아이를 대할 때 좋은 어른이 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거였다. 나이를 먹어서 그냥 어른이 되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건데 좋은 어른이 되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불행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만 있으면 되고, 행복하려면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나의 상황만 좋지 않아도 인생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상황이 다 좋아야 한다는 거다. 아닌 경우들도 왕왕 있으니, 그만큼 행복보다는 불행을 느끼는 게 더 쉬운 일이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좋은 어른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겠지만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걸 다 늠름하게 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왜,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이 아직 어린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않나. 그 마음은 떼를 쓰고, 욕구를 채우며 남들의 시선이나 사회적 제약 없이 멋대로 행동하고 싶을 거다. 그렇지만 나보다 약하고 어리고 미숙한, 돌보아야 할 사람과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른인 체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한들, 그리 높지 않은 나의 허리춤 아래에서 동그란 머리통을 한껏 제끼고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들에게, 나는 누가 뭐래도 어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작 서른이었던 엄마를 아주 어른으로 믿었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위해 진짜 어른인 것처럼 행동하고, 거창하게 말하자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닐까 싶다.
p.s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일 킬로그램짜리 아이스크림 통을 끌어안고 좌식 식탁에 발을 올린 채 글 쓸 땐 역시 당을 보충해야 해, 하며 끊임없이 숟가락질을 하고 있다. 뭐, 어른이 되는 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