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꿈>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하지만 잘 기억하지는 못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꿈의 흔적이 강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때로는 꿈속에서 무언가를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꿈에서 깼을 때 피곤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강렬한 꿈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지만,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하루라는 일상을 시작할 때쯤엔 그 기억의 절반은 날아가버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피곤함만 남긴 채, 꿈은 내 곁을 떠나버리는 거다.
이처럼 잠에서 깨는 순간 날아가버리는 꿈도 있지만, 반면 유달리 기억에 오래 남는 꿈도 있다. 내겐 할아버지의 꿈이 그렇다.
아마 10년도 훌쩍 넘었을 거다. 중학생, 아니 초등학생 때인가,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적이 있다.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어떻게, 왜 돌아가셨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전통 장례로 치러졌던, 그 성대한 장례식의 모습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조각조각 자리하고 있다. 너른 논밭을 사이에 두고 길이 길게 나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 길 위에 줄지어 서 있었다. 다들 흰 삼베옷을 입고, 짚신 같은 것을 신은 채 깃발 같은 것을 들고, 무언가 가마를 태우듯 함께 짊어지고 걷고 있었지.
10년이 지나도 그 꿈의 끄트머리를 기억할 만큼 강렬했으니, 그 당시 많이 되어봤자 중학생이던 나는 얼마나 무서웠겠나. 나는 혹시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는 건 아닐까, 이게 일종의 예지몽 같은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인터넷에 죽음과 관련된 꿈, 장례식 꿈 등 온갖 단어를 찾아보며 이 꿈이 현실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다. 나는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가 부모님께 그 꿈을 말했다. 다행히도, 내 꿈은 별 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그 후로 10년을 넘게 사셨으니까.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편찮아지실 때마다 그 꿈이 떠올랐다. 너무도 강렬해 잊을 수 없었던 꿈속의 그 풍경을. 지금은 보기도 어려운 그 전통 장례식이 내 눈앞에 펼쳐질까봐 두려웠다. 내 꿈 때문이면 어떡하지. 나는 늘 그것을 걱정했다.
그리고 재작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0년 전 꿈속에서 보았던 성대한 장례식은 없었으며, 다들 생각하는 흔하디 흔한, 그런 장례식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내 꿈속에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나의 꿈속에서 신발을 신고 어디론가 떠나셨다.
꿈은 무의식의 실현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꿈엔 그 어떤 의미부여도 하지 않던 나였는데, 그날의 꿈은 달랐다. 할아버지가 내 꿈에 잠시 들러주셨구나. 신발을 신고 좋은 곳으로 떠나셨겠지. 그곳에선 부디 편안하시길. 나는 그렇게 꿈속의 인물이 했던 행동에 의미를 찾고, 행복을 빌고, 그 꿈을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끊임없이 되뇌었다. 꿈이라는 건, 이런 힘도 있구나. 꿈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핸드폰 속 사진을 들여다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이 두 가지 꿈도 함께 떠오른다. 신기하게도 이후로 할아버지의 꿈을 꾼 적은 없다. 할아버지는 이제 완전히 나를 떠나간 걸까. 기왕이면 그 신발을 신고 좋은 곳에서 무탈하게 지내고 계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