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의 시대
01/ 바야흐로 국민대통합시대, 보수와 진보의 싸움은 날마다 벌어졌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새 뉴스거리를 제공하시는 대통령덕에 그들의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인 듯하다. 그렇다면 보수는 무엇이고 진보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에서 보수라고 하면 1번당, 진보라고 하면 2번당을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편가르기해서 이권만 챙기려는 다 똑같은 사람들 같지만 정치단체라면 그들의 방향성이 있을 터,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로 나뉘게 된걸까?
02/ 사실 나는 객관적 시각에서 ‘한국 정치’에 대해 풀어줄 책을 원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철저한 ‘미국의 진보주의자’였다.
03/ 책의 전반을 꿰뚫는 단어는 ‘프레임’이다. 보수와 진보를 두 가지 프레임으로 설명한다.
보수는 ‘엄격한 아버지(Strict Father)’, 진보는 ‘자상한 부모님(Nuturant Parents)’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프레임을 사용하여 보수주의자들은 권위와 엄격함을, 진보주의자들은 보살핌과 책임의식 등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져야 할 진보적 가치들은 왜 주류가 되지 못하는 걸까? 단순히 돈 많고 권력이 강한 기득권 세력들이 보수주의자들이기 때문일까?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 보수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정책을 유리하게 사용하여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수’라는 집단은 오랜 기간동안 천문학적 돈을 들여 자신들의 엘리트들을 키워내었다. 이러한 초석은 그들의 ‘프레임’을 굳건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렇기에 지금 우위에 서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연설문이나 정책, 언론매체에서 사용되는 언어들까지도 아주 세세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바마 케어’, ‘세금 구제’ 등의 말들이 어떻게 탄생되고 우리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면 다들 놀랄 듯하다.
04/ 인지언어학자의 관점에서 풀어낸 프레임이라는 것은 ‘사고의 틀’ 같은 개념이다. 그렇기에 누가 더 견고하고 세심한 프레임을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다. 사람의 머릿속에 프레임이 자리 잡게 되면 그것은 본인의 정체성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고, 그것이 더 커진다면 하나의 정당, 여론이 형성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정치적 입장을 잘 내비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미 내 머릿속엔 ‘진보적 프레임’이 완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보수주의자들의 정책에 공감할 수 없고, 진보주의자들이 펼치는 정책들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은 내 머릿속의 프레임이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생각이 유연하게 바뀔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굳어져버린 나의 프레임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사실 조금 당황했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싸워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05/ 이 책에서는 (당연하게도) 모든 사례가 미국에 집중되어 있고 철저하게 미국인의 시각에서 본 보수와 진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에 대입시키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애시당초 ‘한국정치’에 대해 알고싶었던 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정말 흥미로웠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나 진보주의적 입장에서 쓰여져서 보수의 입장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보수의 입장이 있다한들 전혀 공감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