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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Dec 27. 2021

'회사원 K'의 연말 회고

<연말>

연말. 한 해의 마지막 무렵. 나는 이때쯤이면 올 한 해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아마 작년에도 비슷한 주제로 글을 썼던 것 같다. (찾아보니 작년의 주제는 <끝>이었다. 나는 2020년을 마무리하며 '깎여나간 돌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올해는 휴가 중이다 보니 시간이 많아서인지 한 해의 마무리에 대해서 좀 더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2021년의 챕터는 무어라 이름 붙이면 좋을까 하다가 '회사원 K'로 지었다. 




'나'에 대한 재정의


계속되는 코로나 때문인지 회사를 제외하곤 대부분 집에서 머물렀다. 그 때문일까. 유독 '나'에 대해 고민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나'에 대해 재정의하게 되는 순간들이 왔다. '나'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의 '나'와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됐다. 


작년의 글을 보니 나는 나의 가지들이 깎여 나가는 것에 대해 못내 씁쓸했나 보다. 아마도 그랬겠지. 그간 나는 '김민진'이라는 인간으로 살았다. 어딘가 소속되지 않고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 발을 들이게 된 순간, 나는 하루 8시간 이상을 '회사원 김민진'으로 살아간다. '회사원'도 내 수많은 페르소나 중 하나겠지만 내가 그간 생각했던 '나'와는 많이 다를 테다. 나는 작년까지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했던 나는 이게 아닌데, 자꾸만 깎여나가는 느낌이 들어 속상했다. 회사생활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나의 일상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지난 2년간 알게 모르게 달라져버린 내가 못마땅했다.


많은 고민의 시간을 거쳐서 나는 거기서 오는 불일치를 받아들이게 됐다. 나는 회사원이다. 하루 8시간 이상을 회사원이라는 가면 (페르소나)를 두르고 지낸다. 회사원으로서 조직에 맞추어 이리저리 깎여나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제 회사원으로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됐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자는 시간과 회사에서의 시간들을 제외하면 내가 나를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은 서너 시간 남짓이다. 회사원의 페르소나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이 서너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는 스스로가 되게 한심해 보였다. 모든 시간을 치열하고 열심히 해야만 의미가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고 있다. 휴식을 위해 누워있어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일기를 꼬박꼬박 쓰지만 이제는 쓰지 않는다. 대신 넷플릭스 시리즈를 많이 보고, 일기 대신 2주에 한 번씩 글을 쓰거나 떠오르는 생각은 짧은 메모로 대신한다. 지금의 '나'는 그대로인 듯 많이 바뀌었다.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다. 나를 자세히 봐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를 소중히 잘 돌보아야 한다.


올해는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는 것, 그 자아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연말에 제법 괜찮은 마무리를 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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