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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Feb 21. 2022

상상과 현실 그 중간의 또 다른 세계

<영화>

일년에 100편 가까이 영화를 보던 때가 있었다. 막 대학에 입학했을 그 즈음, 지금처럼 넷플릭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유튜브 콘텐츠가 쏟아지던 시기도 아니었다. 애초에 드라마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관심있는 드라마가 생긴다 한들 항상 끝까지 보지 못하고 끝내버린 게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영화가 딱이었다. 두 시간 남짓의 이야기들. 그 속엔 드라마 못지 않은 기승전결과 카타르시스가 있다. 이미 '명작'이라 불리우던 수많은 영화들이 있었고, 그 영화를 봤다고 하면 어디가서 있는 척 좀 할 수 있는 허영심까지 채워주니 그야말로 내겐 최고의 콘텐츠였다.


과거를 돌이켜봤을 때, 이거 하나는 진짜 잘했다! 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많지는 않은데, 그 중 하나가 '많은 영화를 본 것'이다. (물론 씨네필들이 보았을 땐 많지 않은 숫자겠지만) 


내가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다 때려 부수는 영화들을 좋아했다. 소위 말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었다. 그 영화들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쏟아붓는다. 당연히 재밌었다. 재밌다고 느꼈으니 그게 내 취향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런 영화들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긴 하지만, 내 머릿속에 오래토록 진득히 남는 건 보통의 이야기들이었다. 마음속 한구석에 품고 있는 생각들이지만 일상속에서 섣불리 꺼내긴 어려운 주제들, 일명 '진지충'되기 십상인 이야기들이 영화 속 세상엔 아주 흔한 이야기들이었다. 너무나 개인적이고 부끄러운 미묘한 감정들도 영화라는 탈을 쓰면 작품이 되는 게 좋았다. 그리고 보통의 이야기들에 특별함이 더해진다면, 그건 내게 '명작'이 된다. 


차마 다 뻗지 못했던 상상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도 좋아한다. 화려한 액션이 없어도 된다.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선물해주는 그런 영화를 발견하면 또다른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책을 읽을 땐 머릿속에 그 세상이 잘 그려지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는데, 영화에선 그런 세상을 조금 더 극적이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내가 발딛고 사는 세상이 아닌, 저마다가 가진 수많은 세상들이 스크린 속에서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아직 내 취향이 무엇인지도 모를 그 때, 나는 영화를 통해 수없이 많은 세상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평범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내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른의 경계선에 서 있던 내가 어떤것을 보고, 듣고, 느꼈을 때 마음이 움직이는지, 그것을 영화가 알려주었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들, 즉 매력적인 영화들을 찾지 않게 되었다. SNS를 켜도, 포털을 켜도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끔찍하고 잔혹했다. 나는 그런 세상을 외면하고자 잠깐의 재미만을 좇았고, 그러다보니 쉽게 피곤해졌고, 무감해졌다. 어쩌면 가까이에 답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잠깐의 재미보다 더 크고 특별한 이야기들이 내 곁에 있었는데. 이번주엔 그간 보지 못하고 찜해뒀던 영화들, 혹은 내가 좋아했던 영화들을 꺼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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