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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Feb 21. 2022

혼자 영화를 봤다면 없었을 일

<영화>

학교를 가지 않는 토요일 아침이면 친구들과 영화관으로 몰려갔다. 아침이더라도 영화관엔 사람이 많았다. 그때엔 영화관에서도 모두 은행을 방문한 사람들처럼 번호표를 뽑아야 했고, 번호표 순서가 되어야만 영화관 창구 앞으로 가서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친구들 중 누구라도 먼저 도착하면 미리 번호표를 뽑는 것이 당연한 매너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매일 입던 교복 대신 청바지와 후드 티를 입고 나온 우리들은 당시에 유행처럼 쏟아져 나오던 공포 영화를 보거나 각종 클리셰들로 범벅이 되어 있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골라 봤고,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보고 싶을 때면 번호표를 들고 영화관 직원에게 가서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그렁그렁한 눈빛을 하고 이번만 들여보내 달라는 부탁이 안 먹힐 때면, 번호표를 다시 뽑아 다른 직원에게 배정되길 기다려 또 부탁을 될 때까지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괜한 집념과 오기가 가득했던 성가신 애들이었다.



대학교에 가서도,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되어서도 영화관엔 줄기차게 다녔다. 수업과 수업 사이   공강 시간에도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았고, 데이트해도 영화  편은 보고 나서야 밥을 먹었다.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어떤 영화가 상영 중인지는 항상 날씨처럼 알고 있었다. 다음 주에, 혹은 그다음 주에 어떤 영화가 개봉할지 알았고 개봉일에 맞춰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독립 영화를 보러 일부러  곳까지 찾아가 영화를 보기도 했으니, 우린 모두 영화에  열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과 혹은 애인과 영화처럼 쉽게 함께할 수 있는 취미를 찾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독서는 결국 혼자 하는 일이었으며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같이 보기엔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함께 운동을 하거나 미술관에 가자니, 취향이 다른 경우가 많았고 영화처럼 아무런 부담 없이 함께 좋아할 수 있는 일은 드물었다. 한 시간 반 내지는 두 시간.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면 낯선 사람과도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요샌 사무실이 충무로에 있어, 사무실을 함께 쓰는 친구들과 일찍 퇴근하고 대한 극장에서 영화를 몇 번 봤다. CGV나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아니라 작고 오래된 독립 영화관들을 방문할 때면 오래된 조명과 익숙하지 않은 공간의 순서들이 가끔씩 길을 헷갈리게 만들지만, 보통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우르르 몰려 들어가는 영화관들과는 다르게 조용히 그리고 쾌적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 된다.


우리는 마치 친구들끼리 영화관을 통째로 빌린 것처럼 영화를 봤다. 코로나로 영 방문하는 사람이 없어 대한극장에서는 영화를 한 번 더 볼 수 있는 쿠폰을 줬고, 우리는 또 그다음 주에 몰려가 영화를 봤다. 팝콘을 품에 꼭 안고, 맥주 한 캔을 손에 쥐고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다가 왈칵 눈물을 보인 친구도 있었고 그것을 짓궂게 놀리는 친구도 있었다. 영화 한 편 보는 것, 그건 별 것 아닌 일인데도 저녁 내내 광대가 아프도록 웃었다. 넷플릭스나 왓챠로 혼자 영화를 봤다면 없었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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