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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May 02. 2022

꾸준함은 재능과 달리 절망을 선사하지 않는다

<꾸준함>

재능 때문에 절망했던 나날


타고난 재능을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 타인의 재능이 내겐 절망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고, 나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나의 결과는 왜 이리 처참할까.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이 부러웠고, 내겐 왜 그런 재능이 없나 절망했다. 


웃기게도 그리고 슬프게도, 한국에서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전력질주를 요구한다. 늘 줄을 세우고 순위를 매기면서 한 개인은 하나의 숫자로 나타내어진다. 아주 쉽고도 간편하다. 이런 시스템에서 차이를 가르는 건 재능일 수밖에 없다. 초단거리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재능이라는 무기가 있어야 된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재능이 전부인 줄 알았다. 타고나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 춤을 기깔나게 잘 추는 사람들, 그림을 어마어마하게 잘 그리는 사람들, 운동을 타고나게 잘하는 사람들, 그리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까지. 그들은 재능을 가졌기에 나와는 다르다고 여겼고, 나는 재능을 갖지 못한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꾸준하고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꾸준함은 재능 없는 사람들의 변명이라고, 재능 대신 꾸준한 노력으로 그 간극을 메우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몰랐다. 


출처 : <유퀴즈 온더 블럭> 유튜브


꾸준함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인가, 나는 재능보다 꾸준함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꾸준함'을 지니고 있다. 이제는 타고난 재능으로 '스타'가 된 '사람' 자체보다 그들을 스타로 만들어 주었을 '꾸준함'이 먼저 그려진다. 예를 들면 하루키의 꾸준하고 규칙적인 글쓰기 패턴이 그렇다. 몇십 년 간 가장 유명한 소설가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 재능을 단단히 받치고 있는 건 그의 꾸준한 글쓰기이다. 그의 재능보단 무언가를 오랫동안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게 정말로 대단해 보인다.


굳이 하루키 같은 스타가 아니더라도 주위에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멋진 친구들이 많다. 운동, 식단, 요리 등 끊임없이 자신만의 감각을 갈고닦는 이들이 멋있어 보인다. 그게 놀랄만한 결과물이 아니어도 충분히 멋있다. 이제는 결과물보다는 그 과정을 먼저 보게 된다. 




꾸준함은 절망을 선사하지 않는다.


여전히 내 가치가 숫자로 매겨지곤 하지만, 이제는 그 숫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건 그 숫자 너머의 것들이며, 그런 나를 더 '멋지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바로 '꾸준함'이다.


격한 운동은 아닐지라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안 되던 동작이 될 때의 그 짜릿함, 그것은 재능이 아니라 꾸준함의 결과라는 걸 이제는 안다. 반대로, 되던 동작이 안될 때 더 이상 절망하지 않는다. 또다시 꾸준하게 몸을 움직이면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꾸준함은 재능과 달리 절망을 선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꾸준함을 믿는다. 나를 절망시킬 일이 없기 때문에.


비록 강제성이 있긴 하지만 1년이 넘도록 격주 간격 글을 쓰고 있다. 글을 꾸준히 쓴다고 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건 아니다. 그치만 이젠 언제 어디서나 글 쓰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문장을 빚어내는 감각이 녹슬지 않는 것,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만은 그걸 알고 있다. 꾸준함은 이처럼 새로운 감각을 선물한다. 


무언가 꾸준하게 하면 반드시 변화가 있다. 결국 꾸준함은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을 위한 거다. 꾸준함은 나의 선택이며 노력이며 실천이다. 나는 오랫동안 꾸준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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