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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May 23. 2022

어느 날은 집에 있기로 한다

<휴식>

어느 날은 집에 있기로 한다. 가능하면 한 발자국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바깥에 비바람이 불든 혹은 날이 맑아 모든 사람들이 날씨를 만끽하러 쏟아져 나오든, 그것은 나와 크게 상관이 없다. 집에 있는 시간에 나는 창문 밖을 쳐다보지 않는다. 되도록 강한 햇살이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지 않게 창문에는 천을 걸어두니, 사실은 바깥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좋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본 적 없는 드라마를 하나 골라 시작한다. 이런 날엔 스토리가 길게 이어지는 콘텐츠들이 좋다. 영화는 한 편만으로 끝나버리니까, 굳이 여러 개를 고르려고 애쓰지 않고 드라마를 하나 골라 쭉 이어 본다. 꼭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웹툰 정주행도 나쁘지 않다. 크게 이야기에 몰입하고 감정이입을 하는 편은 아니라서, 이야기 속 기쁨과 슬픔으로 나의 감정까지 오르락내리락하지는 않는다. 상황의 전개와 캐릭터들의 면면들을 흥미롭게 지켜본다. 다만 답답한 이야기는 잘 못 보는 편이다. 


식사는 내가 좋아하고 가장 익숙한 것들로 찾아 먹는다. 새로운 음식 혹은 가게에 도전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집에서 비빔면을 끓여 먹거나, 참치김밥에 라볶이를 배달시킨다. 많이들 지겹지도 않냐고 묻는데, 정말 지겹지가 않다. 비빔면을 끓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5분, 참치김밥과 라볶이를 시키는 시간은 3분도 안 걸린다. 식사가 준비되고 나면 야심 차게 TV 앞에 상을 차리지만 사실 먹기 시작하면 나의 식사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난다. 나는 음식을 빨리 먹는 편이라는 사실을 몇 년 전에야 깨달았다.


동생과 함께 집에 있다 보면, 동생은 자꾸만 산책을 가자고 하고 나는 몇 번이고 거절한다. 걸어야 소화가 되지 않냐고 그러는데, 나는 가만히 있어도 소화엔 문제가 없어 집에 있기로 한 날엔 한사코 산책을 마다하고 누워 있다. 허리가 아프지 않냐고도 묻는데, 아프지가 않다. 누워서 먹을 수만 있다면 누워서 먹을 것이고, 누워서 TV를 볼 수 있으면 누워서 TV를 볼 것이다. 누워서 글을 쓸 수가 있다면, 정말 그러고 싶다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택배 기사님이 초인종을 눌러도 집에 없는 척한다. 집 전화로 전화가 걸려와도, 일부러 안 받을 때가 많다. 휴대폰이 지척에 있지만 쌓여가는 카톡 알림을 읽지 않고 놓아둔다. 급한 연락이 아니라면, 하루 정도는 미뤄져도 괜찮다. SNS에 잠깐 들어갔다가도, 몰려오는 피곤함에 금방 꺼버리고 만다. 바깥세상과 연결되고 싶지 않은 날이다.




나의 휴식은 멋이 없다. 다른 사람들처럼 쉬는 날 공원을 산책하거나, 한강에 나가 돗자리를 펼치거나,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보고 갤러리 특유의 고요함을 즐기는 일은 나에게 온전한 휴식이라 할 수 없어, 쉬는 날에는 하루 종일 잠옷 바람에 안경을 끼고 머리는 까치집이 되어 하루를 보낸다. 뭔가 멋들어진 일을 하고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고 싶기도 한데, 쉬는 날엔 그런 에너지를 내기 싫어 생각만 하다 그만둔다.


예전엔 이런 날들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내일 다시 바깥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가끔씩 갖는 이런 멋없고 쓸데없고 하찮게까지 느껴지는 하루가 나한테는 결국 필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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