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여름휴가라고 하면 여러 모습들이 떠오르지만, 대부분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건 새파란 바다일 테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바닷가와 빼곡히 늘어선 파라솔. 내리쬐는 햇살 아래서 지칠 법도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휴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다.
하지만 그 풍경은 우리 가족들의 휴가와는 꽤 거리가 멀다. 가족들은 모두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도 좋아하지 않는다. 물놀이를 싫어하고, 그게 바닷물이라면 더더욱 별로다. 적당한 쉼과 각자의 휴식을 위해, 뜨거운 햇볕 대신 서늘한 그늘을 찾아가는 우리. 그래서 우리는 바다가 아닌 산으로 휴가를 떠나곤 했다.
우리 가족의 휴가는 주로 자연휴양림이었다. 우리는 탁 트인 해안도로를 달리는 대신, 위태로운 커브길을 달렸다. 우리에게 보이는 풍경은 펼쳐진 바닷가가 아니라 우거진 나무들이었다. 그런 산길을 달리다 보면 차 안에 있던 우리의 몸이 왼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쉴 새 없이 기우뚱거렸다. 산으로 가는 휴가길은 생각보다 더 터프했다.
그렇게 굽이굽이 산속에 있는 자연휴양림에 도착하면 벌써부터 온도가 다른 게 느껴진다. 바닷가에 비해 사람도 덜하고, 태양이 내리쬐어도 그늘로 가면 서늘하기만 하다. 나무 그늘이 적당한 평상 밑에 누워있으면 가끔 한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아주 어릴 적엔 자연휴양림에 있는 계곡에서 튜브를 타고 둥둥 떠 있었다. 그러다 흥미가 떨어지면 나는 물속으로 관심을 돌렸다. 바다와 달리 계곡엔 파도가 없었고 물이 맑아 계곡 바닥이 훤히 비쳤다. 그래서 계곡 물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눈에 보였다. 나랑 내 동생은 물속을 지나다니는 조그마한 물고기를 쫓아다녔고, 때로는 잠자리채나 뜰채를 가져와 물고기를 직접 잡기도 했다. 돌을 들어보면 다슬기가 붙어있는 곳도 있었다. 그러면 또 그게 신기해 종이컵 하나를 가져와 다슬기를 마구 잡았다. 1 급수 계곡의 바위 밑엔 가재가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재를 직접 보고 싶어서 열심히 바위를 들쳐보기도 했다. 물장구를 치지 않아도 재밌는 것들이 이만큼이나 많았다.
물속에서의 놀이가 끝나면 이후엔 라면을 끓여먹었다. 더운 날 웬 라면이냐 싶겠지만 자연휴양림에서 먹는 라면만큼 맛있는 라면은 없다. 저녁이 되면 함께 고기를 굽는다. 고기에 무슨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것처럼 숲 속에서 먹는 고기는 차원이 다르게 맛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산속엔 서늘함이 차오른다. 불어오는 바람에 찬 기운이 가득해서 굳이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그렇게 이불을 폭 덮고 차가운 여름 바람을 맞으며 솔솔 잠에 들었다. 이렇게 숲 속에서의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휴가가 꼭 바다일 필요는 없다. 어디든 떠나면 그만이겠지. 하지만 나는 여름만 되면 산이 그립다. 바닷가의 파라솔 대신, 나무 밑의 평상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더 많아서일까.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빛이 아니라 서늘한 나무 그늘이, 새파란 바다가 아니라 온통 초록의 숲 속이 그립다. 숲 속에서 보내는 휴가가 절실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