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일로 만난 사이>
회사에서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로 만난 사이에 어떻게 친구가 가능해? 회사에서 만난 인연은 딱 거기까지야.' 하지만 그건 나의 편견이었고, 지나친 속단이었다. 일로 만난 사이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조금은 먼, 일로 만난 사이
사회 초년생일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람들이 약간은 무섭고 두려웠다. 그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드러냈다. 마치 반투명한 창고에 비밀 무기를 숨겨두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히 안에 든 것이 무기라는 건 아는데 그게 칼인지, 총인지, 아니면 그냥 나무토막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반면 나는 내 무기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래서 그걸 숨겨야 하는지 드러내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어리숙했고, 그 어리숙함이 실패한 결과에 대한 면죄부가 될 줄 알았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때의 어리숙했던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일로 만난 사람들은 아무도 내 책임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회사는 부모가 아니었으니까.
그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정말 냉정하구나. 다들 각자의 몫을 챙기려 노력하고 있었구나.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은 정말 오롯한 내 것이구나.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하하호호 웃고 떠들던 이들이 순식간에 내게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일로 만난 사이
하지만 이 사회의 원리를 깨닫고 나니 모든 것이 훨씬 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일로 만난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이었다. 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잘하느냐' 그리고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냐'였다. 일단 일을 잘 해내고 나면 때론 그 사람이 무심해도, 혹은 작은 실수를 해도 눈감아 주기도 한다. 그걸 깨달은 후 내 일을 잘 해내고 나니 (잘 해내려고 노력하고 나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훨씬 가볍고 수월해졌다.
머리를 식히려 내려갔던 카페에서 내가 무슨 커피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한 시간 뒤의 점심시간 이야기까지 하다 보면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먹지 못하는지까지 알게 된다.
또한 일을 하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자연스레 가치관을 공유하게 되고, 그 사람과 조금 더 깊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일하는 방식을 맞춰 가다 보면 취향과 기호를 제외한 인간적인 '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좋았고,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자양분으로 삼았다.
멀고도 가까운
그래서 일로 만난 사이는 멀고도 가깝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물은 두렵기만 하지만, 바닥까지의 깊이를 알고 있다면 어느 정도 안심이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비슷했다.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인지하 고나니 그 거리를 멀게 유지할 것인지, 좁힐 것인지는 내게 달려 있었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겠지. 운이 좋게도 회사를 다니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회사를 나오고 나서도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
내가 좁혀 들어간 일로 만난 사이, 혹은 내게 다가와준 일로 만난 사이들. 일로 만났지만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