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과거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테냐고 묻는 질문이 나올 때가 있다. 그건 점심을 먹으러 나왔더니 벌써 하교하고 있는 초등학생을 봤을 때라던지,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중학생 친구들을 볼 때라던지, 아니면 과잠을 입고 느지막이 학교로 향하고 있는 대학생을 마주치게 되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난 돌아가고 싶은가?
친구들의 대답은 각기 달랐다. 어떤 친구는 어릴 때로 돌아가서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천진난만하게 보내고 싶다고 대답하기도 했고, 또 어떤 친구는 대학생 때로 돌아가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땐 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으니, 아마 과거를 다시 살게 된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친구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느 순간 질문이 나를 향하게 된다면, 나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더 잘할 수 있는 자신이 없다.
물론 후회되는 선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행동들이 있었다. 둥글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들에 나는 뾰족하게 대처하곤 했다. 지금 같았으면 안 그랬을 텐데, 그렇게 아쉬워하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을 모조리 되돌린다고 한들 지금의 나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조금 창피했던 순간들이 없어진다고 한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을 크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도 난 ISTJ였고, 지금도 변하지 않고 ISTJ로 MBTI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난 뭔가 쉽게 바뀔 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가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더 노력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또 그렇게 될 것 같지도 않다. 노력은 대부분 어느 정도의 성과를 가져다주었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또 아니었다. 열심히 해도 돌아오지 않는 결괏값들이 있었다.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또 끝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많은 것을 얻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타고난 상황이 그러한 경우도 있었고, 또 타고난 재능이 훌륭한 경우도 있었다. 머리가 정말 팽팽 돌아가는 게 눈에 보이는 친구도 만났다. 난 왜 그보다 더 노력했는데 그만큼 이뤄내지 못하는지, 남들과 비교하는 일은 어느 순간 그만 두기로 했다. 후회는 비교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결과를 받고 나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고 만족하며 다음 기회를 노리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좋았다.
이건 여담인데, 최근에 회사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며 개발자를 해도 잘했겠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어떤 명령어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인다는 점이 흥미를 끌어 예상보다 더 많은 것들을 찾아보며 익히게 됐다. 전공이 건축이 아니라 코딩이었으면 뭐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후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재미 삼아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상상해 보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