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태양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임과 동시에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을 '해'라고 표현한다. 태양, 그러니까 '해'가 1년의 단위가 되어버린 건 지구가 1년을 주기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이다. 새해가 온다는 건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다 돌았고, 다시 똑같은 궤도로 1년을 돌 예정이라는 뜻이다. 오히려 한정된 태양의 수명에서 1년이 지난 것이니, 새로운 해 (새해)가 아니라 오히려 늙어버린 해 (헌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뜻이지 않을까?
새로운 해, New Year라고 표현한 건 아마도 농경사회 때문일 거다. 농경사회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건 꽤 중요한 행사였을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 한 뒤 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건 새롭게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기회였을 테니 새해는 새로운 식량을 맞이한다는 의미다. 먼 옛날의 인류에게 새해는 차디찬 겨울이 아닌 씨를 뿌리기 시작하는 봄 혹은 열매를 수확하기 시작하는 가을일 수도 있었을 거고, 우리나라가 음력으로 새해를 맞이했듯 나라마다 새해가 달랐을 수도 있었을 테다. 어쨌건 먹고 살아감에 있어서 '새해'는 지금보다 훨씬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이상 인류는 농경사회를 살아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다 돌고 나면 여전히 의식을 치른다. 다같이 모여 카운트다운을 하며 불꽃을 쏘아 올리고, 보신각에서는 종을 치고, 한 해의 첫 번째로 떠오르는 해를 보겠다며 해돋이를 보러 간다. 12월 31일에 지는 해도, 1월 1일에 떠오르는 해도 모두 똑같을 텐데 말이다.
하루 사이에 지는 해와 뜨는 해가 달라질 리는 없지만 세상의 많은 숫자들이 한꺼번에 바뀌곤 한다. 사람들이 이토록 새해에 의미를 두는 건 아마도 지난날을 갈무리하고 적절히 끊어갈 타이밍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새해는 많은 것을 카운팅하는 기준이 된다. 다이어트, 취업, 여행 등 미뤄둔 숙원사업들을 입 밖으로 꺼내며 마음을 다잡기에 좋은 구실이 되며, 오래도록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넌지시 덕담을 건네기 좋은 타이밍이 되어준다. 평소엔 누군가의 안녕을 비는 게 어쩐지 민망하지만 새해엔 이런 말이 전혀 민망하지 않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점점 빨리 가는 것 같다며 싱숭생숭해한다. 지구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을 텐데, 왜 1년이 점점 짧게만 느껴지는 걸까. 아마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켜야 할 게 많고 조급 해지는 게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올해는 처음으로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채 새해를 맞이한다. 새해를 맞이하기 딱 좋은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또다시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 동안 무탈하게 잘 지내보았으면 좋겠다. 한국적인 정서를 조금 가미해서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