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인, 만약은 없다

끝끝내 다 읽지 못한 책 ​

by 민진킴


나는 끝내 책을 다 읽지 못했다. 눈앞에서 죽음이 너무나도 생생히 그려져 도무지 읽기가 힘들었다. 최근 몇몇 의학 드라마에서 응급의학과를 다룬 것을 보았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었다. 현실의 응급의학과 의사가 써 내려간 현실은 혼돈 그 자체였다.


나는 비위가 약한 편이다. 영화를 볼 때도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들을 잘 보지 못한다. 폭력과 피가 난무한 영상 자체가 내 속을 뒤틀어 놓는다. 이 책에서 폭력은 등장하지 않는다. 삶의 가장 마지막의 모습들을 적어놓았을 뿐이다. 비록 ‘폭력’은 없었으나 나의 뇌는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람들이 죽기 직전의 고통을 여과없이 머릿속에 그려내었다.

나는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 나는 죽음에 관심이 많다. ‘좋은 죽음’이라는 것이 나의 궁극적 삶의 목표이다. 인생의 소원을 딱 하나 빌 수 있다면 나는 편안히 죽게 해달라고 빌 것이다. 어느때 보다 깊게 잠든채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그런 죽음에 다다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가늠해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편안하고 차분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인 것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보통 죽음을 떠올리면 죽기 직전의 그 마지막이 아닌, 그 사람이 죽음 전까지 걸어온 삶을 살피게 된다. 어쩌다 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나, 불의의 사고라면 그가 얼마나 성실하게 삶을 살아왔나, 뭐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의 민낯을 선명히 보여준다. 삶이 다하기 전 바로 그 직전의 모습들이다.
그 모습들은 전혀 차분하지 않았다. 무거운 공기가 가득할 뿐이다. 죽음 그 자체의 모습을 살피게 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가족에게 잘 해야겠다 뭐 그런 것들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냥, 무서웠다.


그가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써내려간 글들 이외에 재미있는 글도 제법 있었다.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있었고,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 등등 피식거리게 하는 짧은 글도 많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을 맴도는 건 죽음의 그 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면서 나를 무겁게 만든다.


요즘도 내 책장에 꽂혀 있는 그 책을 보며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이고 책을 덮었다 다시 펼치지만 결국엔 늘 다시 책을 내려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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