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불안할까.
이 책은 불안의 원인에 대해 말해준다. 결국은 ‘타인 혹은 세상’ 때문에 불안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이 책에서는 불안에 대한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 놓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안의 원인을 읽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너의 불안의 원인은 이런 것 때문일거야.’라며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생각을 말해준다.
뒤쪽엔 불안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소법을 제시한다. 나에겐 뜬구름 잡는 소리로 느껴져서 상당히 지루했다. 우리는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리지만 극한의 불안감을 마주하면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상태가 된다. 1분 1초마다 생각이 바뀌는데 어찌 평정을 찾을 수 있겠나.
이 책은 불안할 때 안정을 되찾는 방법이 아니라, 삶이 불안하지 않도록 안정을 유지하는 방법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의 상태가 안정적일 때, 내실을 다지고 남과의 비교를 최대한 줄여가며 존재를 단단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쉽게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아래의 짧은 메모는 내가 한창 이리저리 흔들릴 때 쓴 글이다.
우리는 모두 내면에 그릇 하나를 가지고 있다. 어릴 때 우리의 그릇은 유약하기 짝이 없다. 외부의 영향에 지극히 민감하고 예민하다. 소나기가 퍼붓지 않더라도, 조금씩 내리는 부슬비에 어느 날 푹 하고 깨져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깨진 그릇을 곧잘 다시 만들곤 한다. 다시 잘 만들어서 또 다른 그릇을 만든다.
그 그릇은 커 가면서 점점 두꺼워지고, 또 단단해진다. 웬만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잘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나는 그릇을 부수고 싶다.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다 부수고 다시 잘 만들고 싶다. 그러나 이제 이 그릇은 너무 두껍고 무거워졌고, 안에 담긴 것도 조금씩 많아진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것을 다시 찾지 못할까 두렵기에 쉽게 그릇을 깨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깨진 그릇을 버리지 못하고 파편만 감싸 안은 채 상처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 말 한마디에 와장창 부서진 그릇을 부여안고 유리테이프로 붙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비교적 그릇 만들기에 능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훌훌 털어내고 금방 잊는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나는 굉장히 불안했다.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나의 의사 따위는 묻지 않고 울타리를 걷어낸 채 쫓아내는 느낌이었다. 내 그릇은 수 없이 흔들렸고 나는 차라리 그릇을 깨버리고 싶었다. 불안에 흔들리던 나는 조금씩 잠잠해졌고, 완전히 털어내지는 못했지만 조금 더 단순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실체 없는 위로의 말을 들으면 더욱 불안해진다. 하지만 이 책은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불안에 대해 말을 해 주어서 좋았다. 불안에 대해 공감을 얻고자 한다면 이 책은 잘못된 선택이다. 나의 불안에 공감하며 ‘괜찮아, 잘 될 거야.’ 따위의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그 불안은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어. 내가 들려줄게. 잘 들어봐.’라고 이성적으로 접근한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불안을 가라앉히는데 더 도움이 되었다. 책은 마법사가 아니다. 책 한권을 읽어서 나의 상황이 나아지거나, 내 불안을 말끔히 씻어준다면 당장 달려가 그 책을 사오겠지. 이 책은 마법사가 아니지만 나와 우리의 불안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해보도록 만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