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서로 다르니까.
나는 영화를 자주 보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 영화의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난다. 어떤 영화를 떠올렸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 혹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떠오르지만 결말이나 줄거리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남자친구한테 해 주었더니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고 했다.
"작년에 같이 봤었던 영화 기억안나?"
"아, 결말이 기억이 안나는데. 결말이 뭐였지?"
"결말이 기억이 안나?"
"재밌었던 것 같아."
"내용도 기억 안나는데 재미있었던 건 어떻게 알아."
"내가 재미 있었다고 느꼈던 건 기억이 나."
"그럼 영화 왜 봐?"
신기하게도 남자친구는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한다. 몇 년전에 본 영화라도 결말이 어떻고, 전개가 어땠는지 다 기억하더라. 참 신기했다. 나의 경우, 좋아해서 몇번이고 다시 본 영화가 아니라면 거의 기억을 못하기 때문이다. '재밌었지.' '조금 지루했지.' 혹은 '그 장면이 참 좋았지.', '색감이 예뻤어' 등의 짧은 감상과 감정만 남을뿐 영화가 남지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닫고 꽤 충격이 컸다. 이거 혹시 치매아닌가. 건망증 초기 증세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갑자기 억울해서 지난 영화들의 줄거리와 결말을 모조리 검색해본 적도 있었다. 심지어 메모장에 메모해가며 영화의 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누군지 기억나?"
"당연하지. 그게 왜 기억이 안나."
"나는 기억 안나는데."
"나는 선생님 성함이랑 내 학년, 반, 번호까지 다 기억나."
깨달았다. 아, 그와 내가 서로 기억하는 것들이 다르구나.
나는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잘 기억한다. 언제 만나서 어디서 무얼 먹고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좋았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버릇이 있기에 사람과 했던 순간들이 더 오래 기억되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내가 그에게 핀잔을 주었던 일이 떠오른다.
"왜, 우리 저번에 갔었던 음식점 기억안나? 되게 맛있었잖아."
"언제 갔었지?"
"아니, 내 생일날 갔었잖아. 한 달도 안됐는데."
"아 맞다. 어디 있던 거더라? 신사?"
"역삼에 있었잖아. 오래된 일도 아닌데 왜 기억을 못해?"
"넌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냐."
내가 이상한 것도 아니고 그가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냥 서로 다를 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기억하는 것이 서로 다르니까.
하지만 여전히 놀랍긴 하다. 영화를 본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내용이 가물가물해지는 스스로도 이해가 안되고, 불과 몇달전에 갔던 가게가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친구도 이해가 안된다. 나는 이것을 기억하고, 너는 이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이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너는 이것을 기억한다. 똑같은 추억이지만 우리의 기억은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