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 너는 여러모로 중요한 존재다.

이대로 책을 덮기 아쉬운 김혼비의 <아무튼, 술>을 읽고

by 민진킴

(이대로 책을 덮기 아쉬워서, 나의 술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날 좋은 5월의 어느 날, 곱친(곱창 친구를 이르는 말로, 곱창을 자주 먹는 S와 B가 있다.)들과 함께 한강에 가게 되었다. 곱친과 만났지만 그 날의 메뉴는 감자탕이었다. 일요일 낮부터 여는 곱창집을 찾기가 어려워 '그럼 낮감을 하자!'하고 만나서 낮부터 감자탕에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이대로 집에 가긴 날씨가 너무 완벽해서 우리의 발걸음은 한강으로 향했고 당연히 캔 맥주 몇 개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는 친구들이 내게 물었다.


'너 <아무튼, 술> 읽었어?'

'아니, 아직 못 읽었어.'

'아, 그럼 지금 읽어.'


S는 자신의 전자책을 꺼내어 주었고, B는 팟캐스트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읽자마자 곧 충격에 휩싸였다. '배추' 에피소드 때문이었다. 오, 이 작가 심상치 않다. 근래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임팩트 있는 도입부였다. 팟캐스트는 '배추'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심상치 않았다.






나머지 책을 집에 와서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심상치 않다.


글을 그냥 읽고만 있는 것이 내심 아쉬웠다. 작가가 책을 뚫고 나타나 함께 술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싶었다. 이 책에 쓰이지 못한 원고가 더 많다는 이야기를 읽을 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알라딘의 요술램프도 아니고, 책을 문지른다고 작가가 튀어나올리는 없으니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써 보며 위안을 삼기로 했다.


나의 술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1. 나의 첫 술


나의 첫 술은 대학에 와서 했던 동아리 모임에서였다.


동아리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환영회 장소는 중국집이었다. 중국집에서 술을 먹기도 하나? 나는 의아했다. 중국집은 시켜먹기나 했지 직접 가 본적도 거의 없을뿐더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술을 먹는 장소도 포장마차 내지는 이자카야 정도 아닌가? 중국집이라니,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들 중국집에서 술을 잘 마시고 있었다.


식사라고 해야 할지 안주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짜장면을 앞에 두고 처음 소주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쓴 맛의 소주와 달달한 짜장면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짬뽕을 시켰어야 했다. 그러면 짬뽕 국물과 함께 좀 더 술을 잘 먹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사람들과의 첫 만남이라 긴장해서인지 소주는 짜장면보다 훨씬 더 빠르게 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이 날 처음으로 취기를 느꼈다. 세상이 어질어질했고, 술에 취한다는 기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숙취도 없었다. (이때까진 숙취가 뭔지도 몰랐다.) 오, 술 마시는 건 꽤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술을 많이 마신 날은 동아리 MT였는데, 처음으로 양주를 먹었고, 처음으로 필름이 끊겼고, 처음으로 술을 마시고 토했고, 처음으로 숙취란 것을 경험했다. 그야말로 처음으로 술을 '많이' 마신 날이었다. 술을 마시면 재밌을 수도 있지만 지옥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처음 알게 되었다.




2. 마음 맞는 술친구들


앞서 말한 동아리는 술을 정말 많이 마시는 동아리였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이 동아리에서 마음 맞는 술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사실 이 동아리는 꼰대적인 기질로 가득 차있는 집단이었기에 돌이켜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분위기보다 동아리 친구들과 술을 먹는 게 더 좋았나 보다. 나에게 <아무튼, 술>을 빌려주고 들려준 곱친들도, 가장 최근에 만난 술친구들도 이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사실 내 술친구들 중 90퍼센트 정도가 동아리 친구들이다. 친구들은 어쩜 이렇게 나와 잘 맞는 사람들 (술친구)인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마음 맞는 술친구'를 찾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대학에 오자마자 마음 맞는 술친구들을 가득 만나버려서 살면서 이런 친구들이 하나씩 나타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마음 맞는 술친구를 만든다는 것은 주량도 비슷해야 하고, 술에 대한 관심도 비슷해야 한다. 또한 술을 제외한 공통적인 관심사도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래야만 술자리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들이 재밌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처음 보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술을 마시는 것은 감히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술을 마시면서 서서히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애초에 사회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운 만큼 마음 맞는 새로운 술친구를 사귄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얼른 마음 맞는 새로운 술친구들이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




3. '술'을 좋아하는 것과 '술자리'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술을 좋아하면 술자리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큰 오산이다. 이건 토마토와 토마토 주스만큼이나 다른 문제다. 토마토는 좋아하지만 토마토 주스는 극혐하는 (나 같은) 사람이 많지 않은가? 술과 술자리도 비슷한 맥락이다.


술을 좋아 한다는 건 혼자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취미 같은 것이다. 퇴근 후 집에서 맥주 한 캔, 혹은 와인 한 병을 먹을 수도 있고, 퇴근길에 친구를 불러내어 간단한 술 한 잔을 기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술자리'의 기본은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술을 먹는다는 것은 벌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건 그 아무리 좋아하는 술을 마셔도 이겨낼 수가 없다.


결국은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술이 더해져서 술자리가 좋은 것이지, 술이 좋다고 모든 술자리고 좋지는 않다. 토마토 주스의 본질은 주스지 토마토가 아니듯이, 술자리의 본질도 술이 아닌 사람이다.








이렇게 구구절절 써놓고 보니 엄청 술꾼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주량도 평균, 술을 먹는 횟수도 평균, 술을 좋아하는 마음도 평균인 사람이다.


주변의 술친구들 중 누군가는 작업실에 바(Bar)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누군가는 여행을 가서 유명한 바Bar를 섭렵해오기도 했고, 누군가는 단골 술집의 기념 파티에 가기도 한다. 그에 반해 나는 집에 술을 거의 사 놓지 않고 (가끔 맥주를 사 놓는다) 여행지에 가면 거의 술을 마시지 않으며 (마셔보고 싶은 술을 면세점에서 사 오는 게 고작이다.) 단골 술집 같은 것도 없다. (술이 정말 마시고 싶을 땐 집에서 맥주 한 캔 먹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이란 나의 삶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불쑥불쑥 머릿속에 나타나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이 글을 끝낼 때쯤 되니 떠오른 생각이 있다. 이 글을 쓰게 만든 것은 술일까 책일까? 최근, 글을 많이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고민 없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결국 술이겠지. 글을 쓰게 만든 건 술이다. 역시 이렇게 또 머릿속에 나타나서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아무튼, 술. 너는 여러모로 나에게 중요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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