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이 되어서야 돌아보게 된 나의 스물다섯.
스물 위, 서른 아래, 20대의 중간. 스물다섯.
2019년의 1월 1일, 황금 돼지띠라며 온갖 복이 나에게 굴러들어 올 것 같았다. 나의 인생에 화려한 꽃이 필 줄 알았고, 소위 말하는 전성기가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클수록 실망감도 큰 법. 나의 스물다섯은 최악이었다.
최악인 이유는 간단했다. 얻은 것에 비해 잃은 것이 너무 많았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수없이 책에서 읽고, 또 영화로 보았지만 공감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바로 내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이런 경험이라면 미룰 수 있을때까지 미루고 싶었는데, 어쩜 스물다섯에 맞춰 찾아온 건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도대체 누굴 원망한단 말인가? 원망할 대상조차 없었다.
커다란 상실감 앞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간 겪었던 숱한 문제들이 '생채기'라면, 작년에 겪었던 상실감은 '화상'이었다.
종이에 손가락을 베였던 순간은 금방 잊혀진다. 한 순간 따끔하고, 작게 핏방울이 맺히지만 이내 살이 아문다. 며칠 지나면 생채기가 있던 자리도 가물가물해진다.
하지만 화상은 데인 순간도 아프지만, 회복도 더디다. 뜨거운 것에 데어 따갑고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앞으로 생길 흉터까지 걱정하며 상처를 돌보아야 한다. 잘 치료하고, 새살이 돋아나도 희미한 흉터가 남는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다. 이건 상처라는 것을.
작년을 기점으로 깨닫게 된 건, 어차피 세상사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으며,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을 수 있고, 최악의 상황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는 것. 이걸 모두 알고 있다 한들, 무섭고 두렵다. 언젠가 이것보다 더한 어려움이 찾아올텐데, 과연 나는 괜찮을 수 있을까.
링에서 얻어맞는 펀치는 항상 아프다. 앞으로 맞게 될 훅이, 생애 처음으로 맞은 카운터펀치보다 덜 아프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그때가 되면, 스물다섯의 아픔은 싹 잊은 채, 처음으로 맞은 펀치인 것처럼 아파할 수도 있다.
아이유의 '팔레트', 송지은의 '예쁜 나이 25살',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 "스물다섯"을 노래한 음악이 제법 많다. 그 노래 속에서 스물다섯은 예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겐 가혹하기 짝이 없던 한 해였고, 노래 가삿말과는 전혀 달랐던 나의 스물다섯을 흘려보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스물여섯이 되어있었다. 당시엔 상처를 바라보면 화가 나고 아파서 마주할 자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제법 덤덤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그 상처가 여전히 거슬리지만 더 이상 아프지는 않다.
그러니 올해는 아무도 내 곁을 떠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플 것을 알고 맞아도, 역시나 아플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