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닮아가는 나, 그렇게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

퇴근하고 누워만 있던 아빠가 떠오르던 날

by 민진킴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외모, 성격, 사소한 생활습관까지. 언젠가 엄마는 내 손톱을 보며, "네 아빠랑 똑같이 생겼네. 어째 니는 이런 것도 아빠 닮았노."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래서인지, 아빠와 나는 모두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잠도 많다. 집에서 쉬는 날 낮잠을 자는 내 모습은 아빠를 닮아서 그런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다 최근, '이것도 아빠를 닮아서 이런 건가.'하고 스스로 흠칫했던 적이 있다.








아빠의 퇴근 후 그리고 나의 퇴근 후


아빠는 회사에 다녀와 저녁을 먹고 나서 커피 한잔을 타 온 후, 소파 밑에 누워 (왜 소파를 놔두고 꼭 소파 밑에 누울까) TV를 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아빠, 씻고 들어가서 자요."라고 말해도 "어? 어.."라며 대답인지 잠꼬대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말만 내뱉은 채 거실에서 잠들었던 아빠. 얼른 씻고 들어가서 일찍 잠들면 될 것을 꼭 어중간하게 잠을 청하는 아빠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최근 내 모습에서 도통 이해되지 않았던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녀와 현관문을 열면 침대가 마치 블랙홀이 된 것 마냥 나를 빨아들인다. 일단 눕자. 누워서 유튜브로 동영상을 조금 보다 보면 시간은 벌써 9시가 조금 넘었다. 누워 있다 보니 잠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잠들기는 아쉬운 시간이다. '조금만 자다가 일어나야지.'라고 되뇌며 눈을 잠시 감는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뜨지만 시간은 훌쩍 흘러있다. 꿀 같은 단잠을 자고 일어나면 밀려오는 현타를 감당할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영화를 보던지, 책을 읽던지, 글을 쓰던지, 영어 공부를 하면 좋았을걸. 아니 그럴 시간에 그냥 씻고 일찍 잘걸. 지금 머리 감고 나오면 벌써 12시가 넘었겠네. 머리는 또 언제 말려. 씻고 나와서 일찍 잘걸. 아니 화장이라도 지울걸. 휴.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늘 반복한다. 그러다 어제 문득, '이것도 아빠 닮아서..?'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게을러서 혹은 끈기가 없어서 혹은 체력이 약해서가 아니고, 아빠를 닮아서 그런 거라며 나의 잘못된 생활습관의 이유를 아빠한테 슬쩍 돌려버렸다. (아빠 미안) 그러자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졌다. ‘아빠도 그랬는데, 나라고 뭐 다르겠어?’라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생각들로 위안 삼았다. 조금은 덜한 현타를 느끼며 샤워를 하러 갔다.

Photo by Crystal Z. Shi on Unsplash




아빠를 이해하게 되는 날들


직장생활을 하며 아빠를 이해하게 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직장을 다녀온 후 누워있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이제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사실 이 모습은 비단 아빠와 나의 생활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닐 거다. 직장 후 남은 에너지를 열정적으로 쏟아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그리고 아빠처럼 집에서 누워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도 많을 것이다.


이렇게 내 모습에서 아빠의 지난날을 찾아보며, 아빠가 지나왔을 그 시간을 짐작해본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그렇잖아'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아빠를 닮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덧붙여, 아빠와의 거리가 조금 더 좁혀지는 듯한 일석이조의 효과도 생긴다.






하지만 이제 아빠는 바뀌었다. 취침시간이 훨씬 빨라졌다. 회사에 다녀와서 저녁을 먹고 후다닥 씻더니, 안방으로 가서 이불을 주섬주섬 가져와 소파 밑에 셋팅을 한다. 그러고선, "아빠 잘 준비 다했다-"하고 가족들에게 공표한다. 이제 잘 준비 다 했으니 너무 늦게까지 거실에서 TV 보지 말고 들어가서 자란 뜻이다. 직장생활을 30년 정도 하다 보면 나도 저렇게 바뀌려나.


"이렇게 일찍 자면 새벽에 안 깨요?"
"깨지. 한 두시쯤 깰 때도 있다."
"그러고 다시 자요?"
"그치, 근데 곧 다시 잠이 든다."



잠귀가 밝고 예민한 엄마였다면 잠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텐데, 역시 아빠는 금세 잠이 든다. 새벽에 깨도 3분 만에 다시 잠드는 나처럼 말이다. 이것 만큼은 아빠를 닮은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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