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 home & house
- house : 집, 주택, 가옥
- home : (특히 가족과 함께 사는) 집, 집의, 가정의
- 4년의 텀을 두고 써 내려간 '집'에 대한 생각들
# home (2016)
00. 나에게 집이라는 존재는 어딘가 각별하다.
01. 나는 서울에 사는 나의 원룸을 단 한 번도 ‘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집이라는 건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앞서 더 많은 감정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적은 ‘집’은 나의 본가를 말한다. 10년이 넘은 나의 집이다.
02. 휴학 신청 후 모든 짐을 챙겨 본가로 내려왔고, 3주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적응을 할 법해야 하는 시간들인데, 되려 이질감이 나를 덮쳤다.
내 공간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비록 1주일에 한 번이지만 집에 꼬박꼬박 왔기에 그래도 내 집, 내 방이라는 소유의 개념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젠 내 방, 내 침대, 내 책상 등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시간에 방에 새어오는 빛만이 똑같을 뿐이다.
집에 가면 좋다. 편안하고, 안락하며 집다운 집에 온 것 같다. 하지만 내 몸과 정신은 집에 있지만 나에게 필요한 모든 물건들은 서울의 조그만 원룸에 놓여있다. 나의 생활에 맞게 배치된 순전한 나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제 집엔 그런 공간이 없다. 나머지 가족들의 생활습관이 녹아든 장소에 나는 머물렀다 가는 손님 격인 것이다.
굉장히 기묘한 기분이다. 집이지만 집이 아닌 기분. 부산에서도 서울에서도 나는 늘 이런 기분을 가진다. 나를 채우고 있는 모든 '물질'들은 서울에 있지만 20년간 채워왔던 '감정'은 부산에 머무른다.
03. 도대체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 걸까? 집에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지 아직도 답을 잘 못 찾겠다.
# house (2020)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게 집은 'home'에 가까웠지만, 이제 나에게 집은 'house'일뿐이다.
몇 달 전, 본가에 들렀다가 생전 처음 겪는 감정을 느꼈다. 일주일 정도 집에 있으면서 묘한 불편함을 겪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분명히 나는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나 이제 완전한 이방인이 되었구나. 나는 이 집에 살지 않는구나. 나는 가족들의 집에 잠시 와서 머무르고 있을 뿐이구나.
4년 전,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몰라 혼란스러웠던 그 감정이 이제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혼란의 원인을 깨닫고 나자 후련해졌다.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아요.
사실 조금 서글프다. 나는 언제나 그 집을 '나'를 포함한 엄마-아빠-나-동생의 집이라고 생각했건만, 이제는 그 집에 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가족임은 분명하지만, 그 집에서 나누는 정서적인 교감은 더 이상 없구나. 나는 함께 살고 있지 않구나.
이제 집은 그냥 집이다.
한 발짝 옮기면 주방, 또 한 발짝 화장실, 그리고 두어 발짝 옮기면 식탁 겸 책상 그리고 두 발짝 더 옮기면 침대. 열 걸음 이내로 끝나버리는 지금의 집에 내 감정은 어디에도 없다. 왜냐면 내가 살고 있는 이 한 칸의 '집', 아니 사실은 '방'에 조금 더 가까운 이 공간은 언제 끝나버릴지 모르니까. 감정을 쏟아 정을 붙이기엔,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의 존재가 너무나도 위태롭다.
이전의 집이 정서를 함께 공유하는 공간을 나타냈다면, 이제는 추운 날 따뜻하게 지낼 수 있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틀어박힐 수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감정은 철저히 배제된 채 기능이 훨씬 앞서버린 공간이 되어버린 거다.
집은 가족들 간의 감정이 오고 갔던 공간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공간으로 바뀌어버렸다. 감정을 나눌 상대는 오로지 나밖에 없으니.
나에게 house로서 집은 있지만 home으로서의 집은 더 이상 없다는 걸 깨달았고, 내가 생각하는 집 (home)은 노력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그 간극, 결핍 때문에 집 (home)은 나에게 더욱 애틋하다.
그래서 나에게 집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