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 줄 알았는데 점점 괜찮지 않다.

유행처럼 번지는 우울감

by 민진킴

어느덧 2020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슬슬 올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맞이해야 하는데, 내년을 맞이하는 게 새삼 두렵다. 미래를 말하는 게 이렇게 덧없던 적이 있었나.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손을 휘젓고 있는 것 같다. 작년 이맘때 쯤 나는 호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내년엔 어디에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년엔 유럽을 가야지. 아니다 역시 여행은 따뜻한 나라가 좋지. 하와이나 발리를 가야겠어.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무 데도 가지 못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점점 괜찮지가 않다.


올해는 코로나가 지배했던, 아니 지금도 지배하고 있는 한 해다. 모든 유행은 코로나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달고나 커피를 만드는 것도, 집콕 챌린지를 하는 것도, 20대들이 오갈 데가 없자 등산을 하기 시작한 것도 모두 코로나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코로나가 달고나 커피처럼 그렇게 한철 '유행'으로 지나갈 줄 알았다. 잠깐 사람들을 몰아붙이고 지나갔던 다른 전염병들처럼. 2020년에 전염병이라니,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이 유행은 끝나지가 않는다.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질 거야. 수만 번은 되뇌었고, 이제는 잘 적응할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아니었다.


나는 타고난 집순이라 코로나가 없던 시절에도 3일씩 집에 틀어박혀있곤 했다.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전혀 답답하지 않아서 누구보다 이 시기를 잘 견뎌내리라 생각했는데 점점 한계가 오는 느낌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 심지어 그저 스치는 것에도 잔뜩 날이 서있는 상태로 1년을 보내다 보니 이제는 나도 우리도 모두 지쳤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점점 괜찮지가 않다.




가까운 미래에는 안녕한 하루만 가득했으면


우리는 종종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상상하곤 한다. 올해 여름엔 어디로 떠날까? 올해 콘서트는 안 하려나? 전시회 같이 보러 갈래? 확정적인 일은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던 일들. 하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를 보며 그런 말을 내뱉는 것조차 절망적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소리치지만 목소리는 어디에도 가닿지 않는다.


나는 늘 부딪히는 인간이었다.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측도 안 되지만, 어쨌건 한 번 부딪혀보며 나도 모르게 답을 체득하곤 했다. 근데 내년엔 부딪힐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부딪히지 않고 나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많은 고민이 쏟아지는 나날이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내년도 트렌드에 관한 책들이 쏟아진다. 나 또한 궁금함 반, 직업정신 반으로 그런 책 두어 권을 읽었다. 하지만 그런 책을 읽을수록 덧없음이 찾아온다. 고작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세상은 이렇게나 달라져버렸는데, 내년도 트렌드를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 년? 아니 한 달, 아니 1주일 앞도 예측하지 못하는 지금인데 말이야. 미래를 점치는 일이 이렇게 의미 없고 위태로운 일이 되어버렸다니. 서글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르고 삶은 계속 흘러간다. 한 달 후면 우리 모두 새로운 해를 맞이하게 된다. 원래 한 해의 계획을 세우거나 소원을 비는 성격이 아닌데 2021년 1월 1일엔 진지하게 한 번 빌어보려고. 우리 모두 안녕하자고 말이다. '잘 지내고 있어.'라는 스치듯 건네었던 끝인사들이 이제는 그래야만 하는 중요한 약속으로 변해버린 지금, 우리 모두 안녕히 하루를 맞이할 날들을 맞이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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