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끝에서 돌아보는 '나'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 더 많은 설렘과 희열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새해 계획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 해본 적이 한번 도 없지만, 지나간 한 해에 대해 물어온다면 구구절절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 피니시 라인 앞에서 내가 달려온 길을 돌아본다는 건 꽤 짜릿한 일이니까.
그래서 나는 그 해의 끝을 마무리하며 나만의 '연말정산'을 한다.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어디를 여행했고, 누구를 만나서 시간을 보냈고, 책은 얼마나 읽었고, 영화와 드라마는 얼마나 봤으며, 공연과 경기는 얼마나 관람했고, 좋은 노래는 또 얼마나 발견했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 취향과 생각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혹은 그대로인지, 마지막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그렇게 하나하나 톺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1년 단위로 쉼표를 찍으며 나의 시간들을 구별 짓는다. 1년이라는 시간이 한 챕터라고 생각하고, 각 챕터를 마무리하며 이름을 짓곤 하는데 스무 살 챕터의 이름은 '새내기', 스물 다섯 챕터의 이름은 '상실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번 챕터의 이름은 '깎여나간 돌멩이'다. 회사생활을 한 지 3년 차, 올해 나는 처음으로 '사회생활'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이 하나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자신의 취향과 생각이 반영되면 저마다의 공에서 삐죽한 무언가가 솟아오른다. 그런 삐죽한 무언가가 한없이 날카로워지면 성게 같은 모양이 될 거고, 조금 무디게 솟아오른다면 솔방울의 모양을, 그리고 조금 더 무던해진다면 호두 같은 모양이 되지 않을까 상상한다.
과거의 나는 삐죽함이 꽤나 많이 솟은 상태였다. 언제나 호불호는 명확했고, 그게 말로 그리고 표정으로 항상 드러나곤 했다. 싫은 건 죽어도 하지 않는 성격 덕에 나의 삐죽함은 조금 더 날카롭게 유지되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그런 나의 삐죽함이 많이 무뎌지고 또 깎여나갔다. 회사의 일이라는 건 호불호 따위의 '기호'보다 옳고 그름, 최선과 차선, 최악과 차악 등 무엇을 하던 그 결과의 우열이 명확히 나오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나의 취향은 중요하지도 반영되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일의 테두리 바깥에서도 비슷했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 앞에서 내 기분을 말로 표정으로 드러내는 건 아주 멍청한 행동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이 어쩌면 회사 생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하루에 8시간 이상을 보내는 곳에서 이리저리 깎여나가다 보니, 나의 공을 이전처럼 섬세하고 뾰족하게 다듬을 수가 없었다. 그럴 힘도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깎여나가면 뭐 어때. 약간의 체념과 수긍을 더해 받아들이는 게 훨씬 편했다.
대신 그 속이 훨씬 단단해졌다. 사실 (이전에도 결코 무른 편은 아니었지만) 종종 위태롭게 흔들린 적은 꽤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물론 지금도 내가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내가 못나 보일 때가 있지만, 주위에 어른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고 모두들 그런 고민을 한편에 두고 살아가더라. 그리고 내가 그렇게 깎여나간다고 해서 자아가 깎여나가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걸 알고 나니 예전만큼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냥 나는 내 일을 묵묵히 하면 된다. 이걸 깨닫자 속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나는 이번 챕터를 닫으며 '깎여나간 돌멩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내년 이맘땐 어떤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 하나 바라는 건, 올해보단 조금 희망적인 제목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