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끝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하는 것. 영화가 재미없어도 광고에서부터 자리를 잡고 엔딩크레딧이 올라올 때까지 앉아있고, 드라마는 꼭 1편부터 시작해서 내용이 산으로 가도 마지막화까지 보긴 봐야 한다. 책이라고 다를까? 책은 목차부터 시작해서 속독을 해서라도 마지막 장까지 도달한다. 다른 사람들은 중간에 그만두기도 하고 아니면 중간부터 시작하기도 하던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친구 중에는 책을 읽을 때 손에 잡히는 대로 열어 펼쳐진 내용부터 읽는 친구도 있었다. 엄청 신기했다.) 아무래도 성격인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약간의 강박.
과정이 즐겁지 않은데 그것이 무슨 의미냐고 묻는다면, 나에겐 끝에 도달하는 것 자체에 대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재미가 중요한 이유가 되듯이, 나에게는 끝이 목적이 될 뿐이다. 그냥 그뿐이다.
관계의 끝을 자주 상상한다. 관계의 끝이 보여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따금 오히려 관계에 아무런 이상이 없을 때 상상은 시작된다. 이 사람이 내 곁에 없으면 어떡하지? 우리가 더 이상 함께 지내는 사이가 아니게 되면 어떡하지? 그렇게 상상한다. 상상은 즐겁지만은 않다. 항상 내 곁에 함께 지내며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던 사람이 사라지게 된다면, 나는 얼마나 괴로울까. 그것을 가늠한다.
끝을 상상한다는 것은 나에겐 슬프고 아픈 생각이 아니라, 이 사람이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지 알게 되는 과정에 더 가깝다. 내가 누리는 일상은 이 사람이 없음으로 일해서 얼마나 더 달라질까. 내가 회사에서 겪는 일이, 내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들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을 때, 나는 얼마나 더 외로워질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손에 잡힐 듯 선명해진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 그들이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과정이다.
도대체 왜 1년의 끝을 겨울로 정했을까? 그래서 우리는 겨울처럼 차갑고 시린 날들을 '끝'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았나. 그것은 봄이 시작이고 싶어서였을까? 따뜻하고, 새싹과 꽃이 피어나는 것이 마치 시작 같아서? 1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은 결국 누군가가 임의로 정한 날이라는 생각만 들어, 이것이 정말 끝이 맞을까 의심만 하게 되는 연말이 시작됐다.
계절의 마지막인 겨울이 시작되고, 2020년의 끝이 다가왔다. 매년 한 해가 지나간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만 가득했는데, 올해는 2020년을 얼른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이겠지.
연말을 맞아 사진 정리를 하다 올해 찍은 사진이 현저히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올해를 그나마 무사히 견뎌냈다고 생각했지만, 폴더를 보니 그렇지 않았다. 나는 올해 많은 것들을 해내지 못했구나, 억지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여행도 취소되고 페스티벌도 모두 가지 못해 올해는 카메라 들춰메고 신나게 집 밖을 나서는 날들을 없었구나, 그렇게 알게 됐다.
나는 끝을 보고 싶어 하는 인간임에도, 2020년은 그렇게 살지를 못했다. 누구라도 올해에는 그랬을 테다. 모두에게 괴로운 1년이었으니까. 아직은 기약이 없음에도, 내년은 이렇지 않기를 감히 바라본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행복한 한때를 보낼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소박한 바람을 간절히 바라는 2020년의 마지막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