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는 며칠째 아파트 주차장 구석 스티로폼 박스 안에서 곡기를 끊다시피 한 채로 웅크리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이럴 때를 잘 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니의 몸 상태로는 겨울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지니가 혹시나 영영 떠나버린다면 그것 또한 자연의 섭리라 생각하기로 굳게 마음먹고 있었다. 어쩌면 차라리 그런 식으로 쉽게 외면할 수 있게 되어버리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작은 친구는 얼마 남지도 않은 털로 혹독한 겨울 추위를 버텨냈고, 뼈만 남은 앙상한 몸으로 3월의 꽃샘추위까지 넘겼다. 고대하던 따스한 봄날이 왔지만 사람으로 치자면 입 속이 염증으로 가득하고 치통으로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상태로 오랜 시간을 보낸 채였다.
그나마 최소한의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지니가 어느 날부터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자 속이 타들어갔다. 기호성 좋다는 캔을 사들이고, 북엇국까지 끓여서 대령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나 끝내 고개를 돌리긴 해도 매번 음식 냄새를 맡으러 나왔고, 힘없이 웅크려 있다가도 나만 보면 반갑다고 바닥에 몸을 뒹굴뒹굴했다. 인간의 좁은 식견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물 한 모금 삼키는 것도 고통스러울 텐데 사람을 보고 반기다니, 게다가 쫄쫄 굶은 몸으로 온 힘을 다해 꼬리까지 흔든다. 그 모습은 단 하나의 뜻으로 해석됐다. 간절히 살고 싶다는 말. 지니는 세상에서 가장 상냥한 방식으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영양제를, 약을 검색하다가 결국에는 나도 모르게 수술 후기를, 근처 잘하는 병원을 찾고 있었다. 그 후로는 무슨 정신이었나 싶게 일사천리였다. 동네 주민분들께 연락을 돌리고, 병원을 예약했다. 예상대로 만성 구내염을 진단받은 지니는 당장 발치 수술을 받지 않으면 지금 이대로, 엑스레이 상의 비어있는 위장 그대로 죽어가는 채로 사는 것뿐이라고 했다. 차트에는 차곡차곡 항목과 금액이 추가되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누그러졌던 마음은 다시 요동쳤다. 뭐라도 해야 한단 생각으로 병원에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지니가 정말로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어쩌면 병이 깊었으니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송곳니 하나에 11만 원 곱하기 네 개, 어금니 하나에 4만 원 곱하기 열 개에 검사비 30만 원을 더해가며 그에 상응하는 생활의 비용을 떠올렸다. 다달이 들어갈 적금,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한 비상금, 가고 싶었던 복싱장의 몇 달치 회비가 될 수 있는 돈을 생각하니 아쉬워졌다. 정말 그럴 여유가 있는지 한참을 따졌다. 그러나 나의 걱정과 지니의 아픔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것을 덜어낼 수만 있다면 그러기로 했다.
2.6kg의 작은 몸으로 지니는 수술을 잘 견뎌냈다. 수술을 기다리며 혹시 모를 온갖 나쁜 상상을 했던 터라 나까지 온몸에 근육통이 생겨버렸다. 회복실에서 만난 지니는 이빨을 뽑는 큰 수술을 견뎌내기엔 새삼스럽게 작디작은 생명체였다. 우리 집 한편에 마련한 공간에 내려놓자마자 지니는 사료를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는 그간 길에서 못 잔 잠을 한꺼번에 몰아 자는 듯 며칠 내내 자다 먹다를 반복한다. 그제야 나도 잔뜩 웅크렸던 몸을 펴 본다. 누군가 먹고 자는 모습을 보고 벅차오른 적이 있었나. 염증으로 엉망이던 지니의 입안은 이제 아래 송곳니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고, 지니가 나를 향해 냐옹할 때면 하나 남은 송곳니가 빼꼼히 보인다. 수술 전 까맣고 지저분하던 지니의 코는 다시 예쁜 분홍 코가 되었다.
(수술 후 지니는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의 광복냥이 사업에 선정되어 수술비 일부를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