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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민지 Oct 19. 2022

고양이도 돌봄 노동을 합니다 (1)

고알못(고양이를 알지 못하던) 시절,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와 그 후 우연히 마주한 풍경이 나를 길고양이 돌봄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는 걸 생각하면 수많은 우연의 조합이 삶을 이끈다고 믿게 된다. 몇 년 전 SBS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라이프 오브 사만다>는 아프리카 야생에서 홀로 세 마리의 새끼들을 기르는 어미 치타 사만다의 이야기다. 사만다의 삶은 단 한 순간도 편치 않다. 하이에나와 사자는 치타의 새끼를 미래의 경쟁자로 여겨 보이면 죽이기 때문에 사만다는 새끼들을 안전한 곳에 숨겨 놓고 사냥에 나선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수컷 치타들은 사냥에도, 생존에도 유리하지만 싱글맘 사만다는 안타깝게도 번번이 사냥에 실패하고 만다. 힘들게 사냥에 성공한다고 해도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하이에나들에게 먹이를 빼앗길까 봐 식사도 마음 놓고 하지 못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엄마의 삶은 왜 이렇게 혹독한가. 게다가 버팔로 떼를 피해 새끼들을 데리고 이동하던 중 막내 라라가 보이지 않자 사만다는 애타게 콜링 소리를 내며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 다리를 다쳐 엄마를 쫓아갈 수 없었던 라라, 그리고 새끼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만다의 모습에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다행히 두 모녀는 상봉하게 되는데, 매 순간이 죽음의 고비인 냉혹한 세계에서 사만다가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치타 모녀의 치열한 삶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 날, 마치 새끼 치타 라라의 콜링 소리를 연상케 하는 울음소리를 아파트 주차장에서 들었다. 그 소리에 이끌려 구석구석 살펴봤더니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차 밑에 숨어 나를 경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미 고양이가 추위와 위험을 피해 새끼를 데리고 지하 주차장에 숨어든 듯했다. 그렇게 12월의 어느 날, 아프리카 야생이 아닌 차가운 길 위에서 작은 버전의 사만다와 라라를 만났다. 급히 사온 간식을 뜯어 주니 작은 라라는 냠냠 소리까지 내며 먹었다. 고양이들은 너무 맛있는 걸 먹을 때 이런 소리도 내는구나... 어미는 수유를 하느라 몸이 축났을 것이고, 새끼는 난생처음 맛 본 간식이었을 것이다. 도시의 삶 또한 아프리카 야생 못지않게 잔인했다. 주차장에 끊임없이 드나드는 차들,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들, 추위까지.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게다가 같은 고양이들도 싱글맘과 새끼 고양이에겐 위협적인 상대였다. 들은 얘기로는 동네 수컷 대장 고양이가 작은 라라를 쫓아 공격했다고 했다. 이미 길 위의 생태계를 잘 아는 작은 사만다는 늘 숨죽이며 경계했지만 작은 라라는 천진난만하게도 뛰어다녔다. 그러다 나를 보곤 기둥 뒤에 숨어 얼굴만 빼꼼히 내밀어 지켜보곤 했다. 누가 자기에게 우호적인지를,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를 어미 고양이로부터 이제 막 배우는 중이었다.


작은 라라와 작은 사만다가 나를 경계하고 있다


야생의 새끼 치타들의 생존율은 약 10퍼센트에 불과하고, 길 위의 새끼 고양이가 성묘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만만치 않게 험난하다. 그래서 길 위의 삶을 지켜보다 보면 이제는 죽음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날씨와 질병, 불의의 사고까지. 나를 처음 돌봄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하루에도 몇 번씩 사료와 물을 들고 주차장을 드나들게 했던 작은 라라 또한 그해 겨울을 끝으로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어제 멀쩡했다가도 하루아침에 별이 되고 마는 게 놀라운 일도 아닌 걸 알게 되면 '살아있음'이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흔하게 보이는 동네 고양이들이 실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내공 깊은 베테랑 고양이인 셈이다.


언젠가 출산의 흔적이 남은 박스를 발견한 적이 있다. 바닥 곳곳에 남은 핏자국에서 어미 고양이 홀로 고통스러웠을 순간을 짐작할  있었다. 도시 어디를 둘러봐도 임신한 고양이들이 마음 놓고 출산할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저분한 박스 안에서, 후미진  어딘가에서 새끼들은 태어난다. 어미 고양이는 홀로 탯줄을 끊고, 수유를 하고, 다시 먹이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선다.  모든  해내기엔 아무리 봐도 고양이들은 너무나 조그마한 존재다. 지난 3 동안 희박한 확률을 뚫고 어엿한 성묘가  경우는   마리 봐왔다. 나는  아이들을  때면 이상하게 새끼였던 시절의 모습이 함께 겹쳐져 보인다. 한때는 내게 호기심 어린 눈길로 장난을 걸던 새끼 고양이들이 이제는 많은  안다는  하나같이 매서운 눈빛을 하고 나를 경계한다.  눈빛에서 고양이 가족들이 겪은 삶의 우여곡절을 읽어낸다.


(작은 사만다는 또 한 번의 임신을 했고, 다시 새끼들을 잃었다. 그 후 중성화 수술을 받아 지금은 완전히 육아에서 해방됐고, 지금은 모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아파트에서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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