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털 뭉치의 작은 친구들이 사이에 유일한 인간이 되는 기분은 좀 재미있다. 밤이 되면 얘네는 정말로 고양이 세상이라도 된 것 마냥 대범해진다. 겁 없이 주차장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텅 빈 놀이터의 벤치와 미끄럼틀을 점령해버린다. 쫄쫄이는 보란 듯 내 앞에서 높은 나무에 훌쩍 오르고, 예쁜이는 담과 담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넘어 다니다 나를 반기며 높은 담에서 뛰어내린다. 그 앞에 선 유일한 인간은 넋을 놓고 올려다본다. 나는 나무에도 못 오르고 저렇게 민첩하지도 못해서 "와 너 참 잘하네." 하면서 감탄하고 만다. 고양이들의 특수한 신체적 능력을 구경할 때면 나는 그저 무력한 한 인간이며, 인간은 수많은 종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실감한다. 이 순간만은 지구를 점령한 인간이 아닌 소수 종이 되고, 고양이들이 다수 종인 세상에서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그들을 바라본다.
고양이들의 신통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들을 가까이서 본다면 그들이 의사 표현을 할 줄 알고, 다양한 감정도 느낀다는 걸 알게 된다. 맛있는 거 준 사람은 기가 막히게 알아보고 따라오는 건 물론이고, 나를 유인하더니 자기가 지내는 아지트를 보여주었던 내 베프 고양이 쫄쫄이도 있다. 모리는 친구 콩이가 입양 가자 한동안 울적한 듯 풀 죽어지냈고, 냥냥이는 상태가 안 좋은 자신의 새끼를 물고 와 내게 맡기며 도움을 청했다. <짐을 끄는 짐승들>에서 수나우라 테일러는 ‘서구 철학 전통에서 동물들은 끊임없이 말하지 못하는 존재, 결핍된 존재, 의미 있는 사고를 할 수 없는 존재로 간주되었다.’며 동물들은 인간에게 없는 무수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길고양이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주지 않는다. 특히 낮에는 모습조차 잘 드러내지 않는다. 비교적 안전한 거주지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은 한가롭게 광합성을 즐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동차 아래로, 구석으로 숨어 다니곤 한다. 그들이 오랜 시간 불려 왔던 도둑고양이라는 단어처럼 인간 세상에서 길고양이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나 또한 대낮에는 웬만해선 고양이를 만나도 아는 척을 하지 않고, 고양이 쪽에서도 제발 나를 알아보지 않길 바라며 거리를 걷는다. 괜히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간 내 쪽에서든 고양이 쪽에서든 곤혹스러운 일이 생길 가능성만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엔 밥 주지 말라는 협박을 듣거나 내 앞에서 사료를 버리는 것을 목격하고 다툼에 휘말리는 정도의 일을 겪는다. 고양이 쪽에서는 쫓겨나거나 서식지가 노출되고, 운이 나쁘면 밥자리를 잃기도 한다. 이런저런 피로한 일을 겪은 후로는 비로소 어둑어둑해지고 나면 고양이들을 만나러 가게 됐다.
길고양이의 삶을 대변하는 입장에서는 무관심 정도면 가장 고맙고, 겪은 바로도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인 사람들보다는 무관심한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 무관심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애쓴다. 밥 먹는 중인 고양이를 가방으로 가리는 기술을 쓰고, 사람들이 급식소 주변에서 자리를 뜨기를 기다리느라 괜히 동네를 몇 바퀴씩 돌곤 한다. 화단 구석에서 급식소를 정리하다 인기척을 듣고 숨죽였던 순간에는 죄지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나 싶어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인간 중심의 도시 생태계에서 길고양이란 기본적으로 지워진 존재, 없어야 할 존재다.
'길고양이는 도심 생태계의 일원입니다.' 길고양이는 공존 대상이라는 내용의 구청 현수막이 우리 아파트에도 한동안 붙어 있었다. 이것이 공식적인 길고양이의 위치지만, 현실에서는 길고양이가 공존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길고양이는 여전히 악취를 유발하거나 위생상 좋지 않다는 편견의 대상이다. 그러나 돌봄 활동가들이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뜯는 일이 줄어들고, 중성화 수술을 통해 개체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다.
수나우라 테일러의 문장 속에서 우리 인간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한 해답을 발견한다.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 탓에 우리로서는 우리 자신의 것 너머에 있는 지능과 경험을 상상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타자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서 무언가 배우려는 시도를 멈춰 선 안 된다.’ 우리 자신 너머를 상상하고 타자의 삶에서 배우기. 가장 한적한, 깊은 밤중에 고양이들이 길 한가운데에 모습을 나타날 때면 아직 인간과 고양이가 자연스레 공존하며 살기는 힘든 세상이라 두 종은 서로를 피해 시간을 밤과 낮으로 나눠 쓰는 것만 같다. 인간의 오만함에 균열을 내는 캄캄한 밤 속의 고양이들의 날렵한 움직임에 나는 왠지 모를 쾌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