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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민지 Oct 30. 2022

고양이도 돌봄 노동을 합니다 (2)

고양이들의 연민과 우정

그러나 고양이들의 돌봄 노동이 늘 안타까운 것만은 아니다. 교통사고로 어미를 잃은 새끼 고양이 토리는 언젠가부터 우리 동네 고양이 시리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장수 고양이 시리는 메롱이, 러블이, 양말이라는 고양이들과 그룹을 형성해서 늘 함께 모여 다닌다. 동네 캣맘 선배님의 말씀에 따르면 시리와 메롱이의 나이는 놀랍게도 약 10세 정도로,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인 2~3세를 훌쩍 뛰어넘는다. 길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긴 세월을 살아낸 묘르신(어르신 고양이)이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새끼 고양이를 품어주는 것일까.

     

토리는 삼색이 고양이지만 시리는 하얗고 긴 털을 가졌다. 한눈에 봐도 닮은 구석이 없었지만 둘은 모녀 관계 같았다. 토리는 마치 엄마를 따라다니듯 시리를 졸졸 쫓아다녔고, 토리가 밥을 먹을 동안 시리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토리 앞을 지켰다. 혹시 위험한 일이 벌어질까 봐 망을 보는 것 같았다. 시리 덕에 토리는 그룹에 합류했고, 다른 고양이들도 곧 토리를 받아줬다.

    

길 생활에서 친구의 존재는 분명 생존에도 유리해 보인다. 추운 날에 꼭 붙어서 체온을 나눌 수 있고, 위험을 감지한 누군가 도망가면 다른 고양이들도 우르르 따라 도망을 간다. 아무래도 인원이 많다 보니 덩치 큰 수컷 고양이가 새로 나타나도 쉽게 영역을 빼앗기지 않는다. 머릿수로 웬만한 건 해결이 가능하다. 이 다묘 그룹은 친구들 덕분에 여러 위기를 넘겼기에 오래 살아남은 게 아닐까. 하지만 어린 고양이를 데리고 다녀봤자 성묘에게 득이 되는 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린 고양이들은 영역을 넘보는 다른 고양이에게 쫓기기 일쑤고, 쉽게 표적이 된다. 시리는 어째서 자신의 새끼가 아닌 토리를 자발적으로 토리를 돌보는 걸까. 길고양이 사이의 공동 보육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일본의 고양이 생태학자가 쓴 <고양이 생태의 비밀>에 따르면 어미 고양이와 혈연관계인 암컷끼리 공동 보육하는 경우가 있고, 모계 혈통이 함께 생활함으로써 보육은 한결 수월해지고 새끼가 무사하게 길러낼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혈연관계가 아닌, 생판 남의 새끼를 돌봐주는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 이후로도 암컷 고양이가 모르는 새끼 고양이를 거둬 키우는 걸 목격했다. 임신한 적도 없는데 언제부턴가 새끼 고양이와 함께 다니던, 가끔 뒷골목에서 만나던 고등어 고양이가 의아했는데 캣맘들의 소식통을 통해 전해 듣기로는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는 거라고 했다. 고등어 고양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새끼 고양이를 위해 자발적으로 엄마 노릇을 하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를 엄호하듯 이끌고 다니더니 나중에는 내가 따준 캔까지 양보했다. 분명 자신의 생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비효율적인 행동이었다.

    

고양이 사이의 돌봄은 암컷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사이에만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약한 존재는 약한 존재를 돌봤다. 아파트에서 눈칫밥을 먹다 쫓겨나곤 했던 어린 고양이 점순이, 그리고 구내염으로 몸이 쇠약해진 노랑이는 언젠가부터 같이 다니며 서로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점순이는 노랑이 덕분에 아파트 안에서 쫓겨나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악취 때문에 다른 고양이들의 기피 대상이었던 노랑이 곁에 점순이만은 꼭 붙어 있었다.


흔히 고양이는 제멋대로인 동물인 것처럼 묘사되곤 한다. 이기적이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고 여겨지고, 고양이를 주인처럼 모신다고 해서 고양이 집사라는 용어가 생겼다. 그러나 내가 길에서 본 고양이들은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돌볼 줄 아는 이타적인 존재다. 길생활의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에게 연민을 느끼고 돕는 고양이들의 배려심은 놀랍기만 하다. 토리는 그 사이 시리의 곁을 의젓하게 지킬 줄 아는 성묘가 되었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돌봄을 제공하던 둘의 관계는 조금 바뀌었다. 이제는 젊은 성묘 토리가 나이 든 시리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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