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카프카의 생각>, 세계명작읽기모임 엮음, 힘찬북, 201
카프가의 잠언집 『카프카의 생각』 1부의 첫 문장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이 한 문장이 나를 슬프게 한다.
봄날의 곳간, 아름다운 봄날, 곳간, 어쩔 수 없는 것.
흩날리는 꽃가루 속에서도 사람은 그날의 ‘밥’이 필요하지 않던가.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에 등장하는 잊을 수 없던 문장 “밥에는 대책이 없다.”였다.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밥’ 말이다.
카프카의 봄날의 곳간이 슬픈 이유도 같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매일의 ‘밥’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왔던 그의 무거운 어깨, 거인처럼 서서 그를 짓눌렀던 그의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그를 지켰던 글쓰기의 열정.
‘곳간과 폐병’은 그에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글을 썼다.
그가 바랐던 것은 글을 쓸 시간이었다. 그는 글 쓰는 일에 지장만 없다면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밥의 곳간을 채우면서 정신의 곳간을 채워나갈 수만 있다면 만족했던 것이다. 그가 고민한 것은 늘 한 가지다. 직업과 작가로서의 생활을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그가 가족의 부양과 직장의 의무에서 벗어난 것 폐결핵 진단을 받고 요양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실제로 그 시기 가장 많은 작품을 썼다.
지나간 일이 아름다운 것은 멀어졌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 것을 보기는 어렵다. 간격을 두고 바라보면 멋져 보일 수 있다. 간격을 두고 ‘바라 봄’은 마음의 거리를 두자는 것일까? 바라봄의 자세가 일정한 거리가 없으면 불가능한 자세다. 바라 봄은 멈췄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도 철학을 ‘느린 해결책’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란 책이 주는 메시지도 또한 그럴 것이다. 이런 말들이 우리를 ‘일단 멈춤’의 카드를 내밀게 한다. 일단 멈추면 지나간 인생이 보이고 지나간 인생에서는 숨어있던 것이 보이게 마련이다.
멈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카프카가 그랬던 것처럼.
유한한 삶이 덧없음을 만든다. 꽃이 피고, 진다. 꽃은 고와서 지는 것이 덧없고, 다시 피는 꽃이 지는 줄을 알기에 덧없다.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니 덧없다. 비로 오고, 눈으로 오는 구름을 보는 것 또한 덧없다. 이 세상은 가히 덧없다. 그러나 덧없어도 덧없음을 살다 간다. 그래서 이 세상의 결정적 특징이 덧없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나는 잤다, 나는 일어나고 자고 일어났다. 비참한 삶이다.”50
삶의 비참함은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온다.
인생은 짧지만 어떤 날은 지루하다. 반복되는 것은 따분하고 의미 없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런 기분이 비참함일 것이다. 덧없음과 통하지 않을까.
카프카의 아름다운 추억에 슬픔이 섞여 달콤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가 사랑할 때가 아니었을까.
그의 사랑은 불안했다.
카프카가 말했다.
“사랑이란 무의식 중에 은근히 알게 되는 것이다.”96
“사랑이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한 것이다. 우리의 삶을 보다 높이 확대하고 풍부하게 하는 그 모든 것이 사랑이다.”97
그러나 결혼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 실제로 그는 약혼자와 파혼을 거듭했고 결혼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반대도 있었지만, 그는 결혼과 문학을 두고 치열하게 갈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학과 결혼 역시 밥과 글의 문제였던 것이다.
1912년은 그에게 결정적 전환의 한 해였다. 작가의 삶을 살기로 굳힌 것이다.
같은 해 12월에 <변신>을 쓰기 시작했고, 같은 해에 펠리페와 약혼했다. 그녀와 편지를 500통을 주고받았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지 않을 때에 오히려 당신과 더 가까이 있습니다. 골목길을 다니면서 끊임없이 당신을 기억하고, 혼자서 또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 당신의 편지를 얼굴에 가져다 대고 당신의 목에서 나는 듯함 냄새를 맡으면 그 어느 때보다 당신을 마음 깊은 곳에서 느낍니다.”89
그러나 그는 갈등했다. 결혼과 창작의 갈림길에서. 범인처럼 쇠사슬에 묶여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것 같은 절망감을 토로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불안했다. 약혼은 파기되었고 1914년 <심판>을 쓰기 시작했고 이어서 <소송>, <실종자>, <유형지에서>를 썼다. 1915년에는 <변신>을 출판하고 폰타네 상도 받았다.
“정든 두 사람이 헤어질 때는 그 마지막 순간에 서로 할 말이 산더미처럼 많은 법이다. 88
”떠나버린 여자에게 빠져서 그리워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89
사랑을 떠나보낸 카프카의 글이다. 그가 약혼을 파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결혼생활에 대한 불안의 근원은 아마도 ‘문학과 밥의 선택’ 중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가정생활은 매일의 곡예이다. 퍽 위험한 것이다. 이 곡예로는 목이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영혼이 부러질 수도 있다.”105
그는 문학과 결혼 사이 문학을 선택했다.
사랑은 수레처럼 그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운전자이며 승객이며 도로일 뿐이다. 98
그 무렵 폐결핵을 진단받고 휴양지를 돌았다.
1917년 여름, 펠리페와 두 번째 약혼을 한다. 그들은 부다페스트로 여행을 떠났지만 각혈과 두통,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때 그는 직장과 직장과 가족에 대한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아직도 불안하여 1917년 12월 펠리체와 결별한다.
1918년 11월 4개월 병가를 얻어 엘베 강변 슐레지앤에 지내던 중에 그는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체코의 아가씨 율리에 보리체크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반대하여 심각하게 대립하게 된다. 이 대립의 절정으로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쓴다.
요양 생활 중에 많은 작품을 쓴다. 1919년 5월 <유형지에서>와 <시골 의사>를 출판한다.
1920년 4월 메란으로 요양하러 갔을 때 카프카의 몇몇 작품 번역한 밀레나 에젠스티와 편지왕래를 시작하고 “삶은 밀레나를 통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로 간절한 사랑을 표현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열두 살 연하의 기혼이었다. 두 사람 고통스럽게 헤어졌지만, 밀레나는 카프카의 마음속에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밀레나는 <성>에서 여주인공 프리다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밀레나를 향한 카프카의 사랑은 1952년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로 세상에 알려졌다.
“나는 당신에게로 갔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당신에게로. 당신 곁에 숨고자 당신에게로 갔습니다. 당신의 두 손 사이에 얼굴을 묻습니다. 너무나 행복했고 자랑스러웠으며 자유로웠고 강해졌습니다.” 95
1920년 12월, 카프카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이때 21세 의과 대학생이자 결핵 환자인 로베르트 클로프슈토크와 사귀기 시작했고, 죽을 때까지 가까운 관계를 이어갔다.
<성 >의 집필을 시작했고 이어 <단식 광대> <어느 개의 연구>를 썼다.
친구 후고 베르크만에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 19세의 폴란드계 유대인 여성 도라 디아만트다. 카프카의 삶에 동반자 되어 주었다. 도라의 모습은 <작은 여인>에 초상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의 많은 작품이 <작은 여인> <건축물> 빼고 유실되었다.
“방의 천장을 두드리면서-그녀는 내 방의 위층에 살았다-우리가 한 번도 명확한 이해에 다다르지 못할 암호 같은 공간을 관찰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창가에 몸을 기대고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때때로 그녀로부터 축복에 찬 인사를 받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방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들으면서 그 소리 하나하나를 은밀한 신호로 해석했다. 나는 그녀가 자기 전에 기침을 하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97
“사랑이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한 것이다. 우리의 삶을 보다 높이고 확대하고 풍부하게 하는 그 모든 것이 사랑이다.” 97
1924년 병세가 악화되어 프라하, 뷔엔나 요양병원으로 옮겨 다니던 중 도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그는 혜안을 가진 인간이었고 삶을 꾸려가기에는 너무나 현명한 인간이었으며, 이 세상을 헤쳐가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인간이었다. 공포와 오해와 사랑의 부재와 지적인 사기, 이 모든 것들과 싸워나가기엔 부적합한 고귀하고 아름다운 나약함을 가진 인간이었다.” 도라가 신문에 발표한 조사다. 카프카의 사후, 그의 친구 브로트가 ‘모든 작품을 태워달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지키지 않고 <심판>1925년, <성>1926년, <아메리카>1927년 출판했다.